변호인들이 재판정을 모독했다. 법정에 선 피고인과 증인들은 선서 거부 등을 통해 법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판사에 대한 인격 모욕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11월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에서 진행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재판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장관 측의 변호사들은 공판이 시작되자 “한 말씀 드리고 싶다”며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 재판장은 “누구시냐. 왜 오신 거냐”며 “이 법정은 방청권이 있어야 볼 수 있다. 퇴정하라”고 명령했다. 이 변호사는 “퇴정하라고요?”라며 반문했다.
재판장은 “법정 질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하겠다”며 “1차로 경고, 2차로 퇴정 명령한다. 3차로 감치 등을 위한 구속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것으로 부족하면 형사고발하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변호사들은 재판장을 향해 “이것은 직권남용이다”고 반발하다가 법원 경위에 의해 제지당하고 끌려 나갔다.
이후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단은 긴급 입장문을 통해 “법정 경위가 '입정하라'고 안내하여 그 지시에 따라 정당하게 법정에 입정한 상황이었다. 감치 처분 자체는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4일 서울중앙지법 이진관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자신들은 법정 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실이 없고, 법원조직법상 이 부장판사가 퇴정 명령을 내릴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에 불응한 데 따른 감치권 행사도 위법하다고 고소장에 적시했다. 또 감치 재판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이 부장판사가 침해했다고 기재했다.
일반 법정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상황은 또 벌어졌다. 서울구치소는 법원이 전달한 서류에 감치 명령을 받은 변호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빠졌다는 이유로 법원의 감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서울구치소는 법원에 인적 사항을 보완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보완이 어렵다며 석방을 명령했다.
법원이 법정에서 소동을 벌이고 재판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인적 사항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감치 명령을 받은 이들을 풀어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앞으로 법정 소란을 일으켜도 인적 사항 확인을 거부하면 감치를 피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풀려난 김 전 장관 측 변호사들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우리 팀에 대적하는 놈들은 무조건 죽습니다. 이제 이진관 이놈의 XX 죽었어, 이거. 여러분들, 이진관이가 벌벌벌 떠는 걸 보셨어야 돼요. X XXX입니다, 그거. 진관이 그거, 전문 용어로 뭣도 아닌 XX인데 엄청나게 유세를 떨더라고요”라며 욕설과 함께 재판부를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조롱했다.
이 부장판사는 “비공개로 진행한 감치 재판에서도 법정 모욕이 있었다”며 “재판부를 향해 권 변호사가 ‘해보자는 거냐’ ‘공수처에서 봅시다’라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법정 소란으로 ‘감치 15일’ 명령을 내렸지만 ‘신원 불특정’ 사유로 석방됐던 이하상·권우현 변호사의 감치 명령을 다시 집행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1일 입장문을 내고 “법관의 독립과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위법 부당한 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관련 법률과 절차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원조직법 제61조에는 법정 질서를 해치거나 폭언, 소란 등의 행위로 법원의 심리를 방해하는 경우,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한 사람에 대해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138조(법정 또는 국회회의장모욕)는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피고인, 증인들의 태도도 황당하다. 19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둘 다 증언을 거부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전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가 구인영장 집행을 예고하자 의사를 번복해 법정에 나왔다. 김 전 장관은 증인 선서를 하기 전에 “현재 진행 중인 본인의 형사 재판과 관련돼 있어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주신문 절차에서 김 전 장관은 내란 특별검사팀의 질문에 모두 증언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전 장관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선서를 거부할 수 있는 취지로 해석이 되기 때문에 저는 선서하지 않겠다”며 선서를 거부했다. 이에 이 부장판사는 “그럼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히자 이 전 장관은 “ 네. 그러십시오”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는 “과태료 50만원에 처한다”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측은 “3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합의부 재판에서, 이진관 재판장이 합의 없이 과태료를 부과한 건 무효”라며 과태료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이 전 장관측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에 근거해 선서를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진술 거부와 선서 거부를 별개로 판단했다.
앞서 17일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증언을 거부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현재 저는 관련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황”이라며 “부득이하게 일체의 증언을 거부하고자 한다.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거부하는 건 본인 권리인데, 경제부총리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원내대표도 하셨다”며 “어떻게 보면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추 전 원내대표가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모두에 말씀드린 상황 취지로 증언을 거부하게 됐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재차 거부하면서 증인신문은 20분 만에 종료됐다.
추 전 원내대표는 현재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상태로, 국회는 11월 27일 체포동의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재판정에서 피고인은 진술 거부 등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변호인은 의뢰인에 대해 성실의 의무, 비밀유지의 의무뿐 아니라 진실의 의무가 있다. 변호인은 또한 의뢰인에 대한 법률적 방어 등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12.3 불법 계엄과 관련해 피고인측 상당수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법률적 조력에 전념하기보다 재판부를 향해 트집을 잡거나 시비를 거는 모양새다. 심지어 법정 안팎에서 사법부를 모독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태다.
최근 일련의 법정 모독 사건은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폭동 사태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법정을 모독하는 행위는 헌법이 부여한 사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또한 법관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내릴 독립적인 판단을 위축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다. 그런데도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12.3 불법 계엄령과 관련한 재판을 정치화하려는 자들의 책임이 크다. 또한 해괴망측한 시간 단위 계산법으로 피의자 윤석열애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데 이어 피고인 측에 질질 끌려다닌 모습이 역력한 지귀연 재판부를 보면 사법부 스스로 반성할 소지도 있다. 추상(秋霜)같은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