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비스듬하게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외출을 유혹한다. 집을 나서 한강으로 향한다. 강으로 통하는 길은 학교 옆길을 지나쳐야 한다. 샛노란 은행잎이 바람을 타고 하나둘 떨어져 내린다. 지난여름 큰길가 방음벽을 타고 올라 자태를 뽐내던 능소화는 존재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따라 유독 조용하다. 평소 비어있던 자전거길이 주차해 놓은 차량으로 점령당했다. 주차위반 단속도 안 하는 것 같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학교 후문은 굳게 닫혀 있다. 후문에 붙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서야, 오늘이 대학 입학 수능 시험일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나들목을 따라 한강으로 들어간다. 공식 명칭은 ‘나들목 육갑문’이다. 육갑문은 ‘한강 수위 상승 때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해 방지 시설물’이다. 구조물과 조명 관리는 한강사업본부 치수과, 수문 시설 관리는 구청 치수과가 각각 맡고 있다.
너비 4미터, 길이 20미터쯤 되는 나들목은 인도와 자전거·오토바이 통행로로 분리돼 있지만 지나칠 때마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겨울철이 지나면 나들목 천장에서 흘러내린 물이 빙판을 이뤄 거의 매년 보수 공사를 벌인다. 그 짧은 통행로 벽면에 언제부터인가 빔프로젝터가 들어서 광고 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광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런 시설을 어떤 용도로 설치했는지 궁금하다.
한강은 외국인 관광지로 터 잡은 느낌이다. 걷다 보면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한다. 평소 보지 못했던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원 내 혐오감 조성 및 무단 행사 시 과태료 부과’라고 적고 느낌표까지 찍어 뒀다. 바로 아래쪽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 색깔로 중국어가 표기돼 있다. 중국 군인 복장을 갖춰 입은 중국인들이 제식 훈련을 했다던 곳이 그 부근이 아니었나 싶다.
나들목를 통해 곧바로 가면 ‘이랜드 크루즈’ 유람선 선착장에 이른다. 선착장보다 외국계 베이커리 커피숍, 음식점, 편의점 간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유람선과 먹거리를 연계한 크루즈 상품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치킨 패키지, 음식점과 연계한 유람선 패키지, 선셋 디너, 달빛 디너, 불꽃 디너, 달빛 뮤직... 2만 원대부터 20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상품도 있다. 외국인 대여섯 명이 유람선 선착장을 향해 뛰어간다. 예약 시간에 늦은 모양이다.
서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1킬로 미터쯤 떨어진 이벤트 광장에 이르니 전에 보지 못했던 시설물이 강변을 밝히고 있다. 건물 두 동 가운데 한 동은 기존 시설물을 보수했다. 한강버스 여의도 선착장이 그곳에 입주했다. 내부로 들어가니 안내문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승선 정원은 150명 안팎인데 마곡과 여의도를 오가는 버스의 잔여석이 146석이라고 뜬다. 바로 옆에는 ‘잠실, 뚝섬, 옥수, 압구정 선착장 미운항’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기간은 11월 16일부터 안전 점검 완료 시까지, 사유는 한강버스 안전 운항 항로 확보를 위한 반포대교 북단 방향 선착장 주변 수중 환경 점검 및 조치’라고 적혀 있다. 한강 버스가 잠실 선착장 인근 수심이 얕은 곳을 지나다 강바닥에 걸려 멈춰 섰다는 며칠 전 뉴스가 떠오른다.
선착장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은 커피숍, 치킨 체인점, 편의점이다. 밖으로 나오면서 보니 입구 한편에 ‘한강버스 타고 맥주 마신다’는 치킨 업소 광고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다른 신축 건물에는 유람선 터미널이 들어섰다. 건물 상단에 ‘서울 크루즈’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여의도에서 김포를 거쳐 인천까지 가는 서해 뱃길 코스, 여의도와 양화 대교를 잇는 하이 서울 크루즈, 디너 크루즈, 불꽃 크루즈 등으로 이름 지어 놓고 2만 원대에서 시작해 11만9,000원까지 받는다.
새로 들어선 선착장, 터미널을 둘러보다 기존 유람선 선착장을 증축·개축하는 게 예산을 절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술집과 음식점이 너무 많은 것도 거슬렸다. 일본 맥주 업소, 치킨 체인점, 대형 커피숍, 떡볶이, 오뎅, 닭꼬치, 타코, 김밥, 만두, 우동 업소... 아직 비어있는 공간에 또 어떤 음식점과 술집이 들어설지 걱정스럽기조차 했다. 기대하며 찾았는데 실망감만 커졌다.
한강 둔치 쪽으로 걷다 보니 곳곳에 노점상들이 보인다. 제법 큰 간판까지 붙여 놓고 불을 훤히 밝힌 채 영업하고 있다. 그 반대쪽 조명이 없는 길목에는 ‘액화석유가스 (LPG) 등을 이용한 불법 상행위를 금지한다. 본 게시물의 효용을 해한 자는 공용물건손상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이라는 현수막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서울시의 불법 상행위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처럼 여겨졌다.
한강 나들목을 나와 학교 후문 쪽을 지나며 보니 교실마다 불이 켜져 있다. 닫힌 후문 앞에 한 중년 여성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시험이 끝났을 시간인데 의아했다. “시각 장애 학생들이 시험 보는데 다른 학생들에 비해 시험 시간이 1.5배 길다”며 “시험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향해 목례하며 한 주먹을 쥐어 보였다.
한때 한강에서 술을 팔지 못하게 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1년 전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한강공원 금주 구역 지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0%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찬성한 이들은 대부분 음주가 타인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지적했다.
한강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미래 세대에게 한강을 어떤 장소로 남겨줄지에 대한 고민이 덜한 것 아닌지, 요즘 들어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뒷전으로 밀려 나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