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형 위하모니아 대표 ⓒ데일리굿뉴스
 ▲조시형 위하모니아 대표 ⓒ데일리굿뉴스

[데일리굿뉴스] 천보라 기자 = 어느 날 생존율 50%라는 희귀암에 걸린 한 남자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영화 '50/50'. 이 영화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작가 윌 라이저는 젊은 시절 갑작스런 척추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50/50'으로 제작돼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전했다.

윌 라이저가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전환했듯, 암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청년이 있다. 작곡가 조시형 위하모니아 대표는 4년 전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처럼 암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희귀암인 T세포 림프 모구 백혈병/림프종. 당시 그의 나이 고작 28세였다.

2년 가까운 투병 생활은 지난했다. 두 번의 이식과 재발, 합병증 등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 119:71)고 했다. 조 대표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됐고, 그의 안에 감사가 흘러넘쳤다. 음악이라는 달란트를 통해 '한 마리의 양을 챙기자'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부터다. 

그의 뜻에 함께하기 위해 암 경험자, 음악가, 심리 전문가 등 크리스천 청년들도 하나둘 모였다. 위하모니아(WE HARMONIA)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창단 1년 만인 지난달, 암 경험자들과 가족들을 초청해 첫 공식 공연을 열고 암 경험자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창작곡들을 공개해 깊은 위로를 전했다. 

공연을 마친 며칠 뒤 조 대표를 만났다. 그는 위하모니아 멤버들(강영원, 구교석, 김수, 노영한, 문은수, 박영찬, 박인영, 백하슬기, 유건우, 윤예진, 최진량)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감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첫 번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소감이 어떠세요?

"위하모니아 멤버들을 비롯해 공연을 도와주신 김도현, 임성훈 나비공장 공동 대표님과 조우진, 이주연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멤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유명한 프로인데도, 재능 기부로 참여하고 있거든요. 멤버들 덕분에 위하모니아만의 창작도 공연도 할 수 있었어요.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에요."

-공연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암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듣는데,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번엔 암 경험자 조시형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4년 전, 암 진단을 받았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2021년 12월이었어요.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후 2~3주가 지났는데 갑자기 가슴 쪽이 엄청 아픈 거예요. 난생처음 겪어본 고통이었어요.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갔어요. 종양이 보이고 폐에 물이 찼다더라고요. 다음날 관을 뚫고 하루에 1리터씩, 총 2리터를 뽑은 후에 조직검사를 했죠. 그리고 희귀 아형인 T세포 림프 모구 백혈병/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이 크셨을 텐데요.

"처음엔 와 닿지 않았어요. 진짜 건강했거든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유산소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닭가슴살과 샐러드 등을 먹으며 식단도 철저히 지켰어요."

 ▲평소 건강했던 조시형 대표는 28세 때 갑자스런 암 진단을 받고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투병 당시 조시형 대표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평소 건강했던 조시형 대표는 28세 때 갑자스런 암 진단을 받고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투병 당시 조시형 대표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까?  

"코로나 때라 입원이 쉽지 않아 진단받은 지 두 달 만에 치료를 시작했어요. 항암으로 종양 크기를 줄인 후 골수 이식을 준비했죠. 그런데 저와 맞는 골수가 없는 거예요. 동생은 반일치가 나왔고요. 교수님께서 자가이식을 해보고 안 되면 동생에게 동종이식을 받자고 하시더라고요. 2022년 10월 자가이식을 했어요. 그런데 두 달 만에 재발했습니다. 척추로 전이됐고요. 그 시기에 저를 포함해 4명이 자가이식을 받았는데 그중 3명이 서너 달이 안 돼 재발했어요. 솔직히 원망스러웠죠.

재발 후 상황이 안 좋아 급하게 항암을 했어요. 그러던 중에 제 병에 효과가 있다는 신약을 찾게 된 거예요. 신약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 다시 치료를 시작했죠. 다행히 치료가 잘 됐어요. 그래서 2023년 6월 두 번째 골수 이식을 하게 됐어요. 이번엔 동생 골수를 받았는데,  이식 두 달 만에 또 뭐가 나왔다는 거예요.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두 번째 골수 이식 때 냉동해 뒀던 걸 추가로 미니 이식하는 림프구 주입술을 받았어요. 그게 새로운 고통과 절망의 시작이라는 건 몰랐죠. 

이식편대숙주질환이라는 합병증이 발생했어요. 이식 한 달 만에 쓰러져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어요. 거울을 보니 이전에 제 모습은 없고 웬 괴물이 있더라고요. 온몸이 붓고 피부는 다 벗겨져 진물이 흘렀고요.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어요. 눈·코·입을 비롯해 위, 항문, 요도 등 모든 점막이 염증으로 완전히 헐어 통증이 극심했어요.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소변을 볼 때마다 악을 질러댔어요. 이때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생겼죠. 병원에 6개월 동안 있었어요. 부모님이 24시간 교대로 제 옆에서 간병하셨어요."

-어떻게 버텨내셨나요. 

"제가 계속 힘든 소리만 하니까 교수님이 퇴원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시간이 지나야 나아진다고요. 퇴원하고도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거의 집에만 있었죠.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투병 중인 한 친구가 파혼을 당해 우울하다며 저를 만나고 싶다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친구들에게 업혀서만 나가봤지 저 혼자 외출한 적은 없었거든요. 고민이 됐지만, 용기를 내서 나갔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저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야 너 생각보다 심하지도 않은데 왜 그래"라는 거예요. 충격이었죠. 그때까지 제 주위 모든 사람이 "좋아질 거야"라는 이야기만 했단 말이에요. 이 친구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괜찮아졌어요. 저도 이 친구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20분 거리의 아차산을 무려 3시간을 소요해 올라가 야경 명소로 데려갔어요. 이 친구가 야경을 보며 엄청 감동하더라고요. 그때 남을 도우며 살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 제 몸도 기적적으로 회복했어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31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걸 깨닫게 됐죠. 모태신앙이고 또 교회를 다니며 지휘를 계속해 왔지만, 사실 제 안에 믿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저의 회복은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건강을 다시 허락하심을 깨달았은 거죠. 만약 내가 잠시라도 오만한 마음을 갖는다면 벌을 주실 거란 두려움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저를 노력하게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하나님은 회복을 주시기 위해 아픔을 주신다고 생각해요. 저라는 사람은 이렇게 깨부숴지고 으스러지고 태워지지 않았으면 업사이클링 되지 않았을 거거든요. 여전히 제 마음대로 달란트를 사용했을 테고요. 하나님이 제 삶을 녹여 새로운 그릇으로 다시 만드시는 그 과정을 겪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아픔을 주시면 또 회복이 있겠구나, 부족함을 주시면 또 채워짐이 있겠구나 이런 긍정 회로가 생겼습니다."

 ▲위하모니아는 암 경험자와 보호자들의 정서적 회복과 치유, 사회 복귀를 위한 음악적 동행을 하고 있다. 사진은 조시형 대표와 위하모니아 멤버들이 공연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위하모니아는 암 경험자와 보호자들의 정서적 회복과 치유, 사회 복귀를 위한 음악적 동행을 하고 있다. 사진은 조시형 대표와 위하모니아 멤버들이 공연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위하모니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저는 원래 이렇게 살지 않았어요. 음악하면서 세속적인 성공을 좇던 청년이었어요. 주변과 계속 비교하며 살았고,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나 여유 따윈 없었죠. 암 진단을 받고 재발해서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합병증으로 온몸이 무너졌을 때야 비로소 변화가 찾아온 거예요. 앞서 말했듯 암 투병 중인 친구를 만난 일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주변에선 저를 보고 "사울에서 바울이 됐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죠.

이후로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피게 됐어요. 그러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힘써주셨던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침 두 번째 골수 이식 1주년이 다가오기도 했고요. 고민 끝에 감사한 분들을 모시고 작은 연주회를 열기로 했어요. 연주자들이 필요하다보니까 지인인 위러브 홍수희 자매의 도움을 받아 간증이 담긴 모집 글을 공유했어요. 놀랍게도 연주자 17명을 비롯해 기획자, 스태프 등 많은 전문가가 재능 기부 하겠다고 신청했어요.

당초 계획보다 규모가 커지면서 지인뿐만 아니라 암 환자분들과 가족들까지 117명을 연주회에 초대할 수 있었어요. 종근당 등 여러 곳에서 협찬도 들어왔어요. 덕분에 백혈병 소아암 협회에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함께 한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멤버십이 형성됐어요. 그게 위하모니아의 출발이에요. 그리고 그해 암 경험 청년 돌봄 캠페인 '위 케어 리셋'(WE CARE_RESET)의 크루가 되면서 위하모니아가 공식적으로 창단됐습니다."

-암 경험자들을 위한, 암 경험자들에 의한 활동을 이어가는 건가요?

"암 경험자와 보호자의 정서적 회복과 치유, 사회 복귀를 위한 음악적 동행이 위하모니아의 비전이에요. 이를 위해 창작, 공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특히 창작은 암 경험자인 참여자를 중심으로 위하모니아만의 3단계 프로세스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음악 치료사와 상담심리사, 음악가, 기획자인 멤버들이 단계마다 참여자와 협력하여 그들의 정서가 담긴 창작곡을 완성, 무대화하고 있어요. 지난달 첫 공식 공연이 그 결과물이었죠."

-개인적으론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MBC 예능 '남극의 셰프' 등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고요.

"제가 원래 음악팀에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암 진단 받고 투병하게 된 거예요. 함께 팀에 있던 석승희 명지대 교수가 "언제든 네가 다시 곡을 쓸 수 있을 때 자리를 비워놓겠다"며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줬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을 때 바로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 있었죠. '흑백요리사'시즌 1로 경력 단절을 끝내면서, 이어 '흑백요리사' 시즌 2와 '남극의 셰프'까지 작업할 수 있었어요. 바울로 변화된 후부터 예전에는 노력해도 못 따냈던 일들을 갑자기 많이 하게 됐어요."

-과거의 활동이 세속적인 성공을 향했었다면, 현재의 활동은 무얼 향하고 있나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이 딱 제가 가져야 할 사명인 것 같아요. 저의 생존율을 따지면 1.5%래요. 험난한 조건 속에서도 한 마리 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제 사명이 아닐까요. 이것이 복음이라고도 생각해요. 남을 도우면서 무조건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삶을 통해 "교회를 다닌다는 건 어떤 걸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어떤 걸까"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전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저렇게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위하모니아가 더 많은 분께 치유와 회복, 위로,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조금씩 활동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에요. 우선은 참여자를 암 경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까지 확대하려고 해요. 그러려면 구성원도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음악만 하는 게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프로젝트를 넓혀가는 거죠. 그리고 내년 초엔 1, 2기 창작곡을 모아 음반으로 발매할 예정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영상 음악을 계속할 건데요. 저의 음악이든, 저의 경험이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어요. 물론 이 전체가 저한테는 위하모니아예요. 모든 것들이 하모니를 이루니까요. 앞으로도 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위하모니아와 같이 접목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통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희망이라는 건 아주 사소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사실 희망이라는 건 앞으로 뭔가 다를 거라는 바람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주 사소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는 건, 즉 하나님이 결국에 우리에게 주실 회복과 채워짐에 대한 건 되게 사소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압박을 느끼고 급하게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덜었으면 좋겠어요. 그저 지금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에 충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조시형 대표 (사진=본인 제공)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조시형 대표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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