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 교수ⓒ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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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벌어진 건 올여름이었는데, 늦가을이 되어서야 알려진 안타까운 사건이 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베이글 체인점에서 일하던 한 젊은 청년의 사망 사건이다. 

스물여섯, 웬만하면 돌도 씹어 소화할 나이다. 체격도 건장했고 지병도 없었단다. 다만, 과도한 작업량이 지속됐다고 했다. 그 청년이 담당한 역할은 새롭게 오픈하는 지점을 세팅하는 역할이었다. 마치 런던의 한 뮤지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창업자의 요구에 맞춰 각 지점을 ‘완벽’하게 세팅하려니 얼마나 세심하고 치열하게 준비해야 했을까? 

그 창업자는 한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고려한다고. 빵의 맛이나 형태, 디스플레이 방식만이 아니다. 벽면이나 사이 공간에 놓는 장식품들, 하얗고 구김 없는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 심지어 환하고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까지도 다 하나의 ‘완벽한 그림’이 돼야 했다. 

하여 직원들에게는 작업복을 매번 새하얗게 빨아오라고 지시했고, 구김이 가면 안 되니 들고 올 때도 접어서 가져오지 말라고 주문했단다. 더구나 향긋한 빵을 만드는 데 분주한 직원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오브제’로 배치하기 위해 역광으로 일하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분위기에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영리한 마케팅과 더불어 서너 시간은 당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기 맛집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정작 뮤지엄의 ‘오브제’가 돼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비참했다. 더구나 과로사한 청년의 업무는 집중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어서 때론 열다섯 시간이 넘도록 휴식은커녕 밥도 못 먹고 지냈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빵은, 더구나 베이글은 오랜 시간 활동하는 효소의 생명력이 핵심이다. 그 생기가 온도와 습도, 그리고 부지런한 제빵사의 적절한 손놀림과 기다림이 만나야 맛난 빵이 만들어진다. 

'앙'이라는 소설에서 팥빵을 가장 맛있게 만들었던 할머니의 비법처럼, 팥알조차도 살아있는 양 말을 걸어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면서 말이다. 우리가 아침 빵집에 들어가 느끼는 것이 그 창업자가 런던의 한 작은 베이글 가게에서 느꼈다는 ‘바이브’다. 그런데 그런 생기가 넘쳐야 할 빵집이 ‘뮤지엄’이라니! 

뮤지엄이 무엇인가? 뮤지엄 자체는 죽은 오브제들로 꾸며지는 공간이다. 관객이야 산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다 나간 저녁의 뮤지엄이 얼마나 생명력이 없고 음침한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빵도 생명력을 가진 듯 관계적으로 대하지는 못할망정, 살아 숨 쉬는 생명인 직원들을 ‘오브제’로 여기며 ‘배치’한다는 실천이 가당하기는 한가. 

한 개인에 대한 실망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문명 전체가 물질적 결과만 극대화된다면 좋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서,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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