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정원욱 기자 = "오래된 관주성경(본문과 연관된 구절을 표기한 성경) 있을까요? 어머니께서 보시던 건데, 여기엔 있을 것 같아서요."
지난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거리. 십자가 간판이 걸린 작은 책방 앞에 한 손님이 발길을 멈췄다. 안쪽에서 "몇 년대 성경 찾으시냐"는 목소리가 들리자, 손님은 이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성경·찬송 전문 헌책방 '평화서림' 안은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했다. 층층이 쌓인 성경과 찬송가가 천장에 닿을 듯 빽빽하게 들어차,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박진철 평화서림 대표는 "시중에서 찾기 힘든 옛 신앙서적이 많아 이곳을 찾는 분들이 꾸준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서성은(45·로뎀교회)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딸과 성경을 읽다 문득 관련 구절을 함께 찾아보고 싶어졌다"며 "어머니께서 보시던 관주성경이 생각나 일부러 들렀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서 씨의 말을 듣곤 서가를 훑다 가장자리가 붉은 성경 몇 권을 내밀었다. 서 씨는 성경을 펼쳐 본문 사이 주석을 확인하곤 미소를 지었다.
평화서림은 1979년 박 대표의 부친이 문을 연 뒤, 1987년부터 그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신앙인들에게 다양한 성경과 찬송을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됐다. 1970년대에는 200여 개의 서점이 줄지어 활발한 상권을 이뤘으나, 대형서점과 온라인 중고서점의 등장으로 지금은 20여 곳만 남았다. 예전만큼 북적이지는 않지만, 희귀본이나 절판 서적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여전히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평화서림은 신앙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서가의 60~70%가 성경과 찬송이며, 나머지는 주석과 신학 서적, 단행본이다. 박 대표는 "이곳에 있는 성경의 가짓수만큼, 성경을 찾는 이들의 신앙의 흔적도 다양하다"고 했다.
전자책과 인터넷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옛 성경을 찾는 손님들은 끊이지 않는다. 신학을 시작한 늦깎이 신학생부터, 종이책이 익숙한 노년 성도, 부모님이 쓰던 성경을 찾는 자녀들, 추억을 얻고 싶어 찾아오는 청년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SNS에서 '성경 리폼' 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더러있다.
박 대표는 "디지털 시대지만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건 종이책"이라며 "평화서림은 책을 구매하는 단순한 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신앙의 기억을 이어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믿음의 흔적을 지키는 작은 보금자리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작지만 소중한 신앙의 보금자리, 평화서림은 오늘도 믿음의 기억을 품은 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