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정원욱 기자 = 서울의 고등학교 3학년 A군(18)은 수능을 한 달 앞두고 불안이 극심해졌다. 친구가 "집중력이 높아진다"며 건넨 ADHD 치료제를 복용했다가 불면·구토·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부산의 고2 B양(17) 역시 SNS '후기'만 보고 병원을 찾았다가, 체질량지수(BMI)도 측정하지 않은 채 의사에게 비만치료제 주사를 처방받았다. 몸무게는 2㎏ 줄었지만, 복통과 구토로 한 달 내내 고생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적과 외모 고민에 따른 약물 오남용이 심화하면서, 부작용과 중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16~31일 온라인 단속에서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를 '공부 잘하는 약', '집중력 업'이라며 판매·나눔한 게시물 200건을 적발했다. 해당 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처방 없이 판매하면 약사법 위반이다.
심혈관질환 치료제 '인데놀'도 수험생 사이에서 '불안 해소약'으로 불린다. 제품 설명서에는 '만 19세 미만 투여 금지'가 명시돼 있지만, 실제 처방의 77%가 15~18세 청소년에게 집중돼 있다.
외모 고민에 따른 '살 빼는 약' 등 약물 의존도 심각하다. 성인용 비만치료제인 '마운자로'와 '위고비' 역시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다. 마운자로는 출시 한 달 만에 미성년자 처방 건수가 6배 늘었고, 위고비는 지난해 2,600건을 넘어섰다.
단기간 체중 감량 효과로 '기적의 약'으로 불리지만, 메스꺼움·설사부터 췌장염·장폐색 등 심각한 합병증 위험이 보고된 약들이다.
문제는 본래 치료 목적과 무관하게 '성적 향상'이나 '체중 감량'이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약물이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식욕이 사라진다", "시험 기간 한 알로 집중력 유지" 같은 홍보글이 확산되며 10대가 약물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문제가 지적됐다. 최근 5년간 청소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량은 두 배 가까이 늘어 올해 7,000만 정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야는 "청소년에게 약물이 손쉽게 처방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관리·감독 강화를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약물 접근성 차단과 함께 심리·교육적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상담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수능약'이나 '다이어트 약'에 손대는 건 곧 불안의 신호"라며 "약을 먹는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험 전 불안은 대부분 정상적인 불안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체중 감량도 약물은 일시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약물 의존은 결국 더 큰 의존으로 이어지고, 사회에 나가 다른 중독으로 번질 수 있다"며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의 약물 사용 여부를 꾸준히 살피고, 일회성 대화가 아닌 지속적인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