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김신규 기자= “AI는 인간과 동등한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독특성과 관계적·영적 차원을 재조명하게 하는 거울이며, 기술의 지향점은 인간의 대체가 아니라 인간성의 재발견에 두어야 한다.”
한국기독교학회(회장 황덕형 교수)는 11월 8일 서울신학대학교 존토마스홀에서 제54차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AI와 기술시대의 영성’을 주제로 인공지능의 의식 가능성과 그 신학적 의미를 집중 논의했다.
이날 주제 강연에 나선 장로회신학대학교 윤철호 교수는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과학철학적 논의와 신학적 성찰’에 대해 발제했다.
윤 교수는 주제 발제에서 AI가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과학철학과 신학의 두 축에서 고찰했다.
그는 '기능주의'와 '연산주의'가 의식을 정보처리 구조로 환원하며 AI 의식을 긍정하는 반면, 존 서얼의 ‘중국어 방 논증’과 로저 펜로즈의 ‘양자 의식론’은 의식을 생물학적 과정에 귀속시키며 AI 의식을 부정한다고 정리했다.
또한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과 전역적 작업공간이론(Global Workspace Theory)이 제시하는 ‘조건부 가능성’의 틀을 설명하며, AI의 정보 통합 수준이 높을수록 의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와 그 한계를 함께 짚었다.
이 주제발제에서 윤 교수는 ‘AI 의식 = 인간 의식’이라는 등식은 과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인간 의식은 단순한 정보처리가 아니라 역사·체화적 경험, 주관적 감정과 내면성, 사회적 관계와 도덕적 책임성을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반면 AI는 이러한 역사적·정서적 맥락 없이 설계된 연산 구조일 뿐, 진정한 의미의 ‘주관적 경험’을 가질 수 없다면서 그 차이점을 강조했다.
신학적 논의에서는 노린 L. 허즈펠드, 앤 푀르스트, 마리우스 도로반투의 견해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허즈펠드는 인간의 하나님 형상을 이성적·기능적·관계적 범주로 구분하며, AI를 인간 본질을 비추는 거울로 봤다.
푀르스트는 형상을 ‘수행적 개념’으로 재해석해 관계적 실천을 하는 존재라면 인간이 아니더라도 하나님 형상의 수행자로 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
반면 도로반투는 이러한 확장에 대해 “AI에는 자기성과 주관성이 부재하다”며 ‘아무도 집에 없다’(Nobody is home)는 비유로 AI의 한계를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 세 입장을 종합하며 “AI의 등장은 인간만이 가진 관계적 개방성과 취약성, 영적 책임성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체화된 정서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며, “교회와 신학은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존엄과 관계적 본질을 지키는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주제발제에서 윤철호 교수는 “AI 시대의 과제는 인간의 대체가 아니라 인간성의 재발견”이라며, AI가 던지는 물음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철학·신학이 협력해 인간 의식의 체화된 기원과 영적 관계성을 함께 탐구할 때, 기술 시대 속에서도 참된 인간성과 공동체적 선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한국기독교학회는 오늘날 경제와 사회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주제로 지난 3회의 학술대회를 통해서 집단지성적인 연구와 토론을 진행해 온 바 있다.
이후 지난해 11월 2일 53차 정기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과 기독교의 미래’를 주제로 인공지능에 대한 주제발표와 전체토론을 거쳐 ‘AI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기독교학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아울러 이번 정기학술대회를 위해 ‘AI와 영성’을 주제로 논문공모를 실시했으며 27편의 관련 논문을 심사를 거쳐 3편의 논문을 선정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제했다. 또한 논문 공모에 선정된 3명의 신학자인 윤철호 박사(장신대 은퇴, 최우수), 박욱주 박사(연세대, 우수), 이윤경 박사(이화여대, 우수)에게 학술상을 수여했다.
또한 이날 주제발표 외에도 한국신약학회 등 산하 각 지학회별로 논문발표가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