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거리 ⓒ데일리굿뉴스
                     ▲나사렛 거리 ⓒ데일리굿뉴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데일리굿뉴스] 천보라 기자 = '나사렛 예수'.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이전까지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과거 나사렛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변두리의 작고 별 볼 일 없는 마을이었다. 특히 당시 유대인은 갈릴리 지역을 이방으로 여겼는데, 이곳에 속한 나사렛 역시 매한가지였다. 여기서 이방이란 단순히 변두리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이방인과 접촉하며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경멸과 조롱이 담겨 있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는 신약성경 한 구절만 봐도 당대 인식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부 중심 도시다. 갈릴리 산간 지방 해발 약 380m의 분지에 위치했다. 나사렛은 아랍인 거주 지역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아랍인이 살고 있다. 아랍계 기독교 인구 역시 가장 많다.

이스라엘 중앙 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나사렛의 아랍계 기독교 인구는 2만 1,100명으로 집계됐다. 나사렛 인구의 30%에 달한다. 이스라엘 전체 기독교 인구 중에서도 다수가 이곳에 거주한다. 과거나 현재나 나사렛이 기독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유대인은 오늘날에도 기독교인을 히브리어로 나사렛 사람을 뜻하는 '노츠리'(Notzri)로 부르고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나사렛(Nazareth)의 어원은 히브리어 '네째르'(Netzer)로 알려져 있다. 알고 보면 성도들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구약성경 이사야 11장 1절, 메시아 예언의 말씀에 언급되는 '한 가지'가 바로 네째르를 뜻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 즉,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선지자의 예언은 700여 년 후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나심으로 성취됐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장 23절이 증거한다.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선지자의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나사렛에 오셨다.

 ▲수태 고지 교회 ⓒ데일리굿뉴스
 ▲수태 고지 교회 ⓒ데일리굿뉴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1)

2,000여 년 전 변두리 마을이었던 나사렛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순례자에게 추앙받는 성지(聖地)다. 수태 고지(受胎告知) 교회, 성요셉교회 등 오랜 역사를 가진 기념 교회들이 이곳에 위치했다. 이중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성모 영보 성당으로도 불리는 '수태 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다.

나사렛에서 수태 고지 교회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거대한 건축물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이 교회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린, 즉 수태 고지를 받았던 장소에 세워졌다.

교회가 처음 지어진 건 비잔틴 시대인 4세기경으로 전해진다. 이후 파괴와 건설을 반복하며, 오늘날까지 다섯 개의 교회가 이곳에 세워졌다.

 ▲수태 고지 교회 회랑 벽면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낸 마리아 성화가 걸려있다. 사진은 한국에서 온 마리아 성화 ⓒ데일리굿뉴스
 ▲수태 고지 교회 회랑 벽면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낸 마리아 성화가 걸려있다. 사진은 한국에서 온 마리아 성화 ⓒ데일리굿뉴스

수태 고지 교회는 웅장했다. 특히 회랑 외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수십 점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낸 마리아 성화다. 성화마다 마리아가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어, 어느 나라에서 온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온 성화도 볼 수 있다.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는 한글 문구 위로 검은 쪽머리에 푸른 한복을 입은 마리아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교회 건축물은 조각칼로 하나하나 무늬를 새긴 듯하다. 지붕은 마리아의 상징인 백합 모양이다. 파사드(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에는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 사복음서 상징(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새겼다. 청동 출입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부조로 묘사했다.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조형물, 성화 등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마리아가 수태 고지를 받았던 동굴(마리아의 집)로 이어지는데, 현재 출입을 금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을 읽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회당 터. 지금은 교회가 세워                                          져 있다.ⓒ데일리굿뉴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을 읽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회당 터. 지금은 교회가 세워                                          져 있다.ⓒ데일리굿뉴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6~20)

수태 고지 교회에서 나와 건너편 시장으로 향했다. 근처 오랜 역사를 지닌 회당 터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기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수태 고지 교회에서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시장 골목에서 수십 분을 헤맸다. 휴일이라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탓에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한참을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는 시장 골목 한 귀퉁이 작은 주택 안에 숨겨져 있었다. 마침 입구에서 교회 관계자를 만나 회당에 관한 전승을 들었다. 그는 이 터에 있었던 회당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나사렛 지역의 유일한 회당으로 알려지며, 예수 그리스도가 이곳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과거 회당 터 동굴 위에 보존된 교회는 작고 고요했다. 방문하는 순례자들도 잠잠히 머물렀다. 기자 일행은 예수께서 선포했던 말씀을 읽고 찬양과 기도를 올렸다. 

 ▲회당 터에 세워진 교회 내부 ⓒ데일리굿뉴스
 ▲회당 터에 세워진 교회 내부 ⓒ데일리굿뉴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2,000여 년 전 변두리의 작은 마을 나사렛, 그곳에서 살던 무명의 처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메시아를 잉태한다. 마리아는 이어 겸비한 자에게 긍휼을, 비천한 자에게 돌봄을, 주린 자에게 풍성함을 베푸시는 주를 높여 찬양한다. 반면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들을 낮추시는 주를 선포한다.(눅 1:46~55)

감추어졌던 예언처럼 나사렛에서 숨겨진 채 자라난 예수 그리스도. 그는 이곳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능력의 나라였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는 큰 권능과 기사, 표적이 따랐다. 그의 제자들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쳤다(막 1:24, 10:47 눅 4:34 행 2:22, 3:6, 4:10, 10:38). 오늘날에도 나사렛은 만왕의 왕 예수의 이름과 함께 선포되고 있다.

한국을 돌아본다. 이 땅의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하는 기쁜 소식으로 시작돼 성령의 능력을 통해 부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부흥이 세상에 자랑할 만한 크기와 규모, 화려함으로 이어지자 어느새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나사렛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통해, 누구에게 역사하는지 가르쳐준다. 이제는 그 비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으로 돌아갈 때다.

천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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