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의 한 구절이다.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다.

코로나19 장기화와 팍팍한 현실의 영향이 크지만, 술에 관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알코올 중독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출처=셔터스톡)
(사진출처=셔터스톡)

알코올중독 위험…음주문화·업계 마케팅 등 영향

서울 관악구에 혼자 사는 7년차 직장인 A(33)씨는 최근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19로 약속이나 모임이 대부분 사라진 가운데 A씨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캔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내 소비자의 술·담배 지출액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가계의 소비 지출 가운데 술과 담배 지출액은 4조 2,975억원이었다. 이는 1970년 관련 통계를 낸 이후 가장 많은 액수다. 

우리나라 성인의 음주율은 여전히 높은 축에 속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성인의 고위험 음주율(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은 7잔, 여성은 5잔 이상, 주 1회 이상 음주)은 2005년 11.6%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올라 2018년에는 14.7%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를 봤을 때도 우리나라 만 19세 이상 성인의 월간 음주율(최근 1년 동안 한달 1회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은 60.8%에 달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월 1회 이상 꾸준히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천 역시 술 문제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크리스천 가운데서도 음주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독 청년 이모 씨(32)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 잦아졌다"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당히 마시며 즐기는 법을 알게 되니, 어느 순간 괜찮다고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교회의 청년부 담당 부목사는 "술로 인한 청년들의 고민 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술 절제가 힘든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고 밝혔다.

중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목회자 A씨도 "코로나19로 대면상담이 어려움에도 알코올 중독에 관한 상담이 증가했다"며 "교회 집사와 장로, 심지어 목회자까지 술을 심심치 않게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술 문화에 유달리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숨어있다. 

최근에는 음주를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대중문화 콘텐츠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캐치프레이즈는 '기승전술'이다. 술 한잔으로 일상의 위로를 받는 현실 공감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IHQ채널의 '마시는 녀석들', tvN '우도주막', 채널S '신과함께' 등 음주 콘셉트 예능 프로그램들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샀다.

미디어 속 음주장면의 노출도 이전보다 빈번해졌다. 그만큼 술에 대한 경각심이 줄었다는 의미다.

여기에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류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즐기는 음주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혼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이 일상화되기도 했다.

▲음주 운전 뺑소니 차량.(사진출처=연합뉴스)
▲음주 운전 뺑소니 차량.(사진출처=연합뉴스)

음주 폐해 심각…매일 14명 음주로 사망

문제는 관대한 음주 문화와 함께 주취 범죄와 알코올중독환자가 더욱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전체 범죄 166만여 건 중 약 30%가 주취로 인한 범죄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최근 10년간 신고된 아동학대 가해자의 40%가 범행 당시 음주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알코올 관련 사망자 수는 총 5,155명으로 1일 평균 14.1명을 기록했다. 알코올 관련 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은 10.0명으로 직전 년도 대비 9.8% 증가했다. 지난 2014년 8.8명까지 떨어졌던 알코올 관련 사망률은 2015년 이후 9명대를 유지하다 2020년 10명까지 늘었다.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와 국민들의 건강 악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도 문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의하면 음주폐해로 인한 조기사망과 의료비 지출, 생산성 감소 등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은 연간 9조 4,524억원에 달한다. 흡연(7조 1,258억원), 비만(6조 7,695억원)에 비해 높은 편이다.

'중독포럼'은 알코올중독환자가 155만명 이상으로, 사회적 비용이 23조 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관대한 음주 문화에 대한 교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등 술을 권하는 그릇된 사회 분위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어디서나 술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밤늦게까지 술을 판매하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어 음주에 취약하다"며 "모든 국민이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금의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술은 단순히 친목과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일 중독과 사회적 불안에서 탈출하려는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며 "술에 대한 지나친 관용을 버리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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