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화석인 ‘시조새’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과학계 석학들로 구성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시조새는 교과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최근 발표한 것. 이제 주사위는 이달 안으로 수정본을 제출해야 하는 교과서 출판사들에게로 넘어갔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진화론 꼭 가르쳐야”

과학기술분야 석학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하 한림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갖고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을 발표, 진화론과 시조새 논란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진화론은 과학적 반증을 통해 정립된 현대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며 "아직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생명의 탄생과정과 생물종 진화에 대한 이해는 분명하게 구분해 설명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시조새와 말 화석에 대해서는 “해당 부분의 수정이 필요하다”며 일부 교과서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한림원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조새부터 현재의 새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에 있는 20여 종의 새를 추가로 넣을 것과 △말의 진화 과정에서는 일부 교과서가 1926년에 나온 오래된 그림과 자료를 그대로 사용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다양한 진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진화도를 게재할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가이드라인을 총 6개 출판사 7개 집필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과학교과서 인정기관인 서울시교육청과 교과서 집필 출판사는 한림원의 의견을 검토한 후 내년도 교과서를 만들게 된다.

교진추 청원에 진화학계 반박하며 논란 확산

시조새 논란은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회장 이광원, 이하 교진추)가 지난해 12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시조새 기술 내용을 삭제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것에 대해 진화학계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본격 공론화됐다.

교진추는 청원서에서 “공룡이 조류로 진화한 중간 종 생물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시조새에 대한 기술은 학술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관련 내용의 삭제 및 수정을 요구했다.

구체적인 근거로 이들은 △시조새가 비행이 가능했던 멸종 조류임을 공식 선언한 ‘국제시조새학술대회’(1984) △‘시조새는 깃털 달린 공룡’이라는 중국 고생물학자들의 주장 △시조새 화석의 위조를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학설 등을 제시했다.

또한 교진추는 지난 3월 ‘말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이에 대한 내용도 삭제ㆍ수정해 줄 것을 교과부에 청원했다. 말의 점진 진화를 보여주는 중간 종 화석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으며,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이 감소한 것은 진화의 증거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교진추의 청원 내용은 과학 교과서 집필 출판사 7곳에 전달됐고, 일부 출판사들은 ‘시조새’(5곳), ‘말 화석’(3곳)과 관련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했다.

교과서 업계가 움직임에 나서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명 과학저널을 통해 해외 언론에까지 보도가 되자 국내 진화학계가 뒤늦게 반발했다. 한국진화학회 추진위원회는 지난 6월 “교진추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언급된 학계의 동향도 왜곡되어 있다”며 공식 반론문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교진추가 대다수 개신교인으로 구성된 단체임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창조론과 진화론 또는 종교계와 과학계의 대립으로 확대됐다. 일각에서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단체의 무모한 소행’이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일어났다.

그러자 교진추는 “이번 청원은 창조론을 과학 교과서에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소개한 교과서를 바로잡자는 취지”라며 “종교적 시각이 아닌 학술적 시각에서 진화론의 문제점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교과부는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 교과서 수정ㆍ보완 시한인 9월 말 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각 시ㆍ도교육청에 지시했다. 한림원이 이번에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도 서울시교육청이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시조새 논쟁에 대한 과학계의 입장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교진추 반박문 발표…교과서 업계 움직임 지켜봐야

이에 교진추는 지난 7일 반박문을 발표, 진화론의 오류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반박문에서 “시조새를 ‘유일한 중간종’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서술돼 있다고 하면서 ‘원시적 조류’라고 표현한 것은 진화론을 고수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며 “시조새는 ‘완전한 조류’ 또는 ‘깃털 공룡’이라는 주장이 있음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 추리에 근거한 ‘다양한 원시조류’의 기술 권고는 또 다른 시조새 논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말의 진화가 직선형이든 관목형이든 질서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일종의 정향성 이론으로,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며 말의 진화계열이 삭제돼야 함을 재확인했다.

교진추는 “진화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반영한 수준 높은 ‘과학’ 교과서가 되기 위해서는, 진화론은 우주만물이 우연과 시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철저한 유물론적 자연주의로, 약육강식을 강조하는 철학적 사상임을 가르쳐야 한다”며 교과서의 진화론 개정 청원 작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내년도 과학 교과서에 시조새와 말의 진화 부분이 실릴지 안 실릴지의 여부는 이제 교과서 출판업계의 선택에 달렸다.

업계에서는 일부 수정 또는 현행 유지 등의 방식으로 한림원의 가이드라인이 대체로 수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단정하기엔 이르다. 교과서 출판업계는 이달 24일까지 인정기관인 서울시교육청에 수정본을 제출하게 된다.

과학계 석학들의 모임으로 대표성을 갖는 한림원의 이번 발표가 교과서 출판업계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칠지, 시조새 논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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