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데일리굿뉴스] 이새은 기자= "20대 후반 사회초년생입니다. 3년간 꾸준히 모은 5천만 원을 루나 코인으로 다 날렸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LUNA)와 테라(UST)의 화폐가치가 99% 가까이 폭락하자 한탕을 노리며 거금을 투자했던 청년들이 공황에 빠졌다. 전 세계에서 지난 일주일 사이 증발한 루나와 테라의 시가총액만 약 450억달러(약 57조7800억원)다. 국내 피해자는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온라인에는 '루나 사태'로 몇 년간 모아온 자금을 잃었다는 인증 글이 쏟아지고 있다. 루나와 테라의 최고경영자 권도형 씨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부는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루나와 테라가 한때 가상화폐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들었던 인기 코인이었던 만큼 이번 폭락 사태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상화폐 가격 폭락은 이번 루나 사태 이전부터 존재해온 문제다. ‘비트코인’이 열풍을 일으킨 2017년부터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크고 작은 희비를 겪어왔다. 지난해 5월만 하더라도 중국의 가상화폐 제재 조치와 미국 재무부의 과세 의무화로 단 하루 만에 비트코인 가격이 30%나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잡음과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국내에서 가상화폐를 1억원 이상 보유한 사람은 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원화 마켓과 코인 마켓 등 국내 가상화폐 전체 거래소의 실제 이용자는 558만 명이고, 이 가운데 1억원 이상 보유자는 9만4천 명에 이르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보유자가 9만 명, 10억원 이상 보유자도 4천 명이나 됐다.

더 놀라운 점은 가상화폐 보유자 중 20대 이하 청소년이 전체의 24%인 134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주요 4대 거래소의 지난해 1분기 신규가입자를 분석한 결과, 2030 세대가 전체 가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가상화폐 가격에 올라타 '인생 역전'을 꿈꾸는 2030 세대가 증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심하다 보니 대학생들이 가상화폐 투자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며 “가상화폐 관련 글을 커뮤니티에서 자주 접하면 소액으로 거액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약세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시세 전광판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의 현재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약세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시세 전광판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의 현재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문제는 가상화폐의 중독성이다. 마약처럼 한 번 빠지면 쉽사리 끊기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변동성이 큰 탓에 도박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강동우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인 대박’처럼 예상치 못하게 큰 보상을 경험하면 중독과 관련된 뇌의 회로가 활성화한다”며 “그런 보상을 다시 경험하려는 갈망이 스트레스와 중독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일반 증권시장과는 달리 가상화폐는 거래소에서 24시간 매매가 가능하고 가격의 상한이나 하한도 없다. 중독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호가 효력정지) 등이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최소한의 보호장치조차 없다. 잠들지 않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시장구조는 투자자를 중독시키기 최적의 조건을 가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상화폐에 중독되면 일상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 일쑤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정신적 질환을 겪기도 한다. 특히 소득이 적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의 경우 코인 가격이 변동에 더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남 모씨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코인 수익률에 따라 매일 울고 웃는 등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며 "코인도 점점 신규 코인에 눈이 가고, 자꾸 더 센 수익률을 주는 고위험 상품을 찾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번 루나 사태로 7천만 원을 잃은 이 모씨는 “절망감에 하루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가상화폐에 절대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일확천금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청년들은 줄지 않는다. 심지어 루나 사태로 '아비규환'이 벌어진 가운데 하락장에서 기계적 반등을 노리는 이른바 '죽음의 단타'에 손을 대기도 한다. 온라인 비트코인 커뮤니티에는 반등을 기대하며 "루나 매수 마지막 기회다", "루나 지금 로또 아니냐"라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며 “단타 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폐지돼야 할 코인에 심폐소생을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도박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과열돼 있다”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온라인 투자에 익숙지 않은 사람을 겨냥한 투자사기 범죄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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