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대표이사ⓒ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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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지나고 열흘 뒤 4월 10일, 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거다. 정치의 계절, 국정 현안마다 정치권은 날카로운 공방이다. 각 정파는 사활을 걸고 각양각색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권자인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리마다 몰려든 인파 앞에서 지지를 호소한다. 모처럼 주권자의 시간임을 실감한다. 국민이 정치를 결정하는 ‘국민 정치의 시간’이다. 연호하는 군중의 모습은 외침이다. 정치와 정치인을 향해 묻고 답을 요구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동양 사상계의 거목, 공자의 대답이다. 논어(論語)의 안연(顔淵)편에 기록되어 있다.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정치(政)가 무엇이냐고 물었다(子貢問政). 공자는 “식량이 충분하고 군대가 충실하면 백성은 정부를 믿게 되어 있다(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고 했다. 정치의 핵심적인 3요소를 식량(足食), 군대(足兵), 국민의 신뢰(民信)로 꼽았다. 정치란 경제(식량)를 잘 살려 백성을 고루 잘 살게 만들고, 국방력(군대)을 튼튼히 해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이 믿고 따른다는 의미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정치 지도자가 리더십을 행사할 때 불가피하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부터 포기해야 할까요(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공자는 첫째로 버릴 것으로 ‘군대’를 꼽았다. 다음은 ‘식량’을 버리라 했다(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두 가지 모두 의외의 답이다.

국방과 안보를 포기하면 국가가 사라질 수 있는 위기에 빠진다. 둘째는 국민의 죽고 사는 문제인 식량,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국민의 생존’을 희생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가장 중요한 국가의 구성요소이다. 정치의 존재 이유다. 이 두 가지를 토대로 정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먼저 버리라니 수긍하기 어렵다. 이 의문에 대해 공자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된다(自古皆有死)’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세 번째,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면(배반하면) 정치는 설자리가 없다(民無信不立)고 했다. 진실로 공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군대와 식량을 포기하는 그 이상으로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말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경제와 국방 안보도 언제든 견실하게 세울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국민이 신뢰하면 모두 지키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치와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민주주의 체제 국가에서 지도자의 권위(리더십)는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때문에 공정하고 평등하게 행사해야 한다. 법에 의한 민주적 통치, 법치주의가 원칙이다. 국가와 사회공동체, 그리고 모든 사람의 관계는 제도와 법, 규범에 의지해 규명된다. 법치는 법과 도덕, 관습에 따라 국민의 삶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관리하며 통제까지 가능한 법치는 공정과 평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정치가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데 공정하고 평등하면(不偏不黨) 국민의 신뢰를 받아 바로 선다.

반대로 법 집행이 공정성을 잃으면 합법을 가장한 국민에 대한 폭력이다. 사법부가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정치는 신뢰를  잃게되고 사회공동체의 안정성이 무너진다. 민주적 법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인 이유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붕괴의 수순으로 간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선거라는 민주 절차가 정치인과 정부에 대한 신임 여부(국민의 신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정치관이 주는 통찰이다.

‘믿음’에 대한 통찰은 공자의 정치관으로만 규정되는 게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Arrow) 하버드대 교수는 ‘일반균형이론’에서 현대 수학적 방법론으로 ‘신뢰’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애로우 교수는 “신뢰의 결핍이 경제적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특히 오늘 같은 비대면 초연결 시대, 사람들의 모든 활동은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된다. 신뢰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직접 만나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결정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부활절, 2000년 전의 예수가 오늘도 살아서 현대인의 삶 속에 역사하는 것도 믿음이다. 세계 25억 명, 전체 인구 1/3이 그를 믿고 따른다. 그 이유는 권력자로서 ‘군림’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고 약자를 섬긴 헌신 때문이다. 목숨까지 내어줌으로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한 그 행함에 있다. 정치의 계절, 국민은 어떻게 정치할 것인가? 정치인을 선택할 기준은 ‘예수’에 있다. ‘행함’이다. 지나온 과거의 행적을 보고 정치의 미래를 설계할 수밖에 없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은 속임수다. ‘예수’까지는 아니라도 그를 닮고자 했던 과거의 행적, 결과로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공의(公義)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 정치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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