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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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마을로 들어섰다. 실개천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목적지에 이르러 차에서 내렸다. 민가 몇 호가 보이지만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건너편 마을회관에는 태극기와 지자체를 상징하는 깃발이 강풍에 펄럭이고 있었다. 하늘을 가린 고목과 낡은 정자는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지켜본 듯했지만, 더 이상 제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 듯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모퉁이를 끼고 호젓한 오르막길로 접어 들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폭 2미터가량의 농로였다. 한 쪽은 논과 밭, 다른 한 쪽은 나지막한 야산이다. 한 어르신이 노인용 전동 스쿠터를 조심스럽게 몰고 맞은 편에서 내려오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르는 분이지만 머리 숙여 인사드렸다.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조선과 고려의 건국 설화가 깃든 성수산이 있는 마을이지만 야산 지대가 많아 논농사도 활발하다. 순천-완주 고속도로와 17번 국도, 전라선 철도가 지척을 지나고 치즈 테마파크도 부근에 있지만 전체 인구는 1천 5백 명을 약간 웃돈다.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 노년층이다. 

마을에도 봄 기운이 깊어 졌다. 이름모를 산 새가 청명한 하늘을 여유롭게 날아다녔다. 자연은 누런 빛을 털어내고 푸른 색깔로 변색 중이다. 농부들은 땅을 갈아 올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많은 눈에, 비까지 흡족하게 내린 터라 봄 가뭄 걱정은 안 해도 될 성싶다. 

내려오는 길, 인적이 없는 농로를 활보하고 있는데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깜짝 놀라 길 옆으로 급히 피했다. 우악스럽게 생긴 산악용 사륜 오토바이가 소음과 함께 속도를 내며 돌진해 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운전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휑하니 지나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며 오토바이가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니, 야산 한쪽에 태양광 패널이 줄지어 설치돼 있었다. 산등성이 안쪽에 자리잡은 탓에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태양광 패널 단지는 농로를 따라 대규모로 조성돼 있었다. 

한때 주민들이 태양광 패널 설치에 반발해 현수막을 걸어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태양광 패널 사업 관계자로 여겨졌다. 농로를 따라 올라갈 때 이상한 차량이 산 등성이에 세워져 있던 것을 무심코 지나쳤던 터였다. 
 
두 시간 넘게 마을에 머물며 딱 두 사람을 보았다. 스쿠터를 탄 어르신과 산악용 오토바이를 탄 운전자, 대한민국 외진 시골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는 듯했다. 인구는 줄고, 노인은 많고, 개발을 이유로 자연은 훼손되고… 일전에 그 지역 군수를 만났던 일이 있다. 토박이인 70대 후반의 군수는 노령 인구의 증가와 낙후된 고향의 미래를 걱정하며 개발과 관광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개운치 않았다. 차창으로 본 3월의 남녘 산하는 봄 색을 더해가고 있었지만 건성으로 지나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노랗고, 하얀 꽃을 선보이고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 쪽으로 향하는 상춘객들은 휴게소의 꽃들 아래서도 추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 날 달리기를 하러 한강변에 나갔다. 산수유, 매화에 더해, 개나리까지 터졌다. 눈요기거리가 넘쳐났다. 겨울 철새라는 청둥오리가 텃새라도 된 것일까. 무리 지어 자맥질하며 봄 햇살을 맞고 있었다. 
둔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시골길의 고요와 한적함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뤘다. 따사로 왔던 전 날과 달리 바람이 거세,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지만, 많은 이들이 몰려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 단위 상춘객들도 적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이 유별나게 많았다. 

다인승 자전거에 함께 탄 몇몇 청소년들은 괴성까지 지르며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외투를 벗어 던지고 반팔 차림인 그들 모습에서 되돌릴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줄지어 달리기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노점상도 다시 돌아왔다. 외국인들도 노점상을 차려 놓고 운영하는 게 이채로웠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기와 음식 냄새가 봄내음을 가로막고 있었다. ‘3월 한 달, 불법 노점상 특별 단속 계도기간’이라는 서울시 미래 한강본부의 현수막이 무색해 보였다. 한강 보안관은 그 곁을 자전거를 타며 지나쳤다. 2024년 3월 중순 풍경이다. 

송기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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