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까지 스며든 탈(脫) 남자다움·여자다움
지나친 젠더 뉴트럴 성 정체성 혼란만 야기
 

'성(性)벽'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성 중립적인)이 열풍을 일으키며 2020년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패션·뷰티를 시작으로 문화·예술, 일상생활까지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젠더 뉴트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탈(脫) 남자다움·여자다움의 움직임이 커지는 가운데 이에 따른 우려도 적지 않다.
 
 ▲젠더 뉴트럴 열풍이 일고 있다. 젠더 뉴트럴이 일상생활까지 스며드는 가운데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한국 최초의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 ‘라카’(LAKA).(사진=라카 갈무리)
  
치마 입는 '남자', 수트 입는 '여자' 
 
최근 공개된 한 TV 광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남성 모델이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광고 영상은 세 명의 남녀 모델이 연이어 등장하며 색조 메이크업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젠더 뉴트럴 메이크업 브랜드 '라카'(LAKA)는 "컬러는 원래 모두의 것"이라는 콘셉트로 메이크업 시장 문을 두드렸다. 젠더 뉴트럴 콘셉트는 성공이었다.
 
라카에 따르면 광고에서 남성 모델이 바른 립스틱은 자사 온라인몰에서 남성 구매 비중이 30%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에서도 베스트셀러다.
 
젠더 뉴트럴의 선두주자는 패션계다. 패션계는 지난해부터 올해의 트렌드를 젠더리스(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패션 경향)로 꼽으며, 컬렉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지난해 9월부터 한 달간 열린 2020 F/W 4대 패션위크(뉴욕·런던·밀라노·파리)는 성의 고정관념을 벗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패션쇼에는 남성 모델들이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와 꽃무늬, 러플, 리본 등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룩을 소화했다. 오프숄더 등을 입고 어깨선을 드러낸 남성 모델도 등장했다. 남성에게 암묵적으로 금기시됐던 핫핑크와 샛노랑 컬러도 눈에 띄었다.
 
반면 여성 모델은 오버사이즈나 과장된 어깨선을 강조한 파워수트 등 남성 같은 매니시(mannish) 룩을 선보이며 런웨이를 누볐다.
 
젠더 뉴트럴 열풍은 교복과 아동복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영국 웨일스와 잉글랜드 등 일부 지역 학교에서는 '성 중립적' 교복을 도입했다. 교복을 남성용, 여성용으로 구분하거나, 성별에 따라 치마나 바지 등을 입도록 강요하는 것이 금지됐다. 일본 도쿄도와 지바현 등 일부 학교에서는 남녀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 교복을 선보였다.
 
문화·예술계는 젠더 뉴트럴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분야다. 최근에는 세계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신데렐라>(2021년 개봉 예정)가 화제다. 여성 캐릭터인 요정 대모 역할에 가수 겸 배우 빌리 포터가 캐스팅된 것. 게이인 빌리 포터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공식석상에 참석하는 등 젠더리스의 대표주자다.
 
일상생활에서도 젠더 뉴트럴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성 중립 양육을 선택하는 부모가 늘었다. 영국 더 타임스에 따르면 한 30대 부부는 아이가 성별과 관계없이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아이의 성별을 공개하지 않고 남아용 여아용 옷을 번갈아 입히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면 스스로 성별을 선택하도록 돕겠다는 것.
 
성중립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데는 젠더 논쟁과 마케팅 역할이 컸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성 역할에 대한 반향과 사회적인 흐름이 소비문화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젠더 뉴트럴을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라카처럼 화장품 소비 계층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확장되면서 매출이 늘어나는 블루오션이라는 것.
 
하지만 이에 따른 우려는 크다. 문화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가 젠더 뉴트럴을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이면서 주체적인 사고나 비판적인 생각 없이 그대로 흡수할 여지가 있다고 경계했다. 젠더가 분명한 사회 속에 살아온 기성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이나 Z세대들은 젠더 개념이 굉장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성별을 고리타분한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젠더 뉴트럴이 성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성 역할에 대한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
 
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 역시 건강한 성 역할의 붕괴를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꼽았다. 그는 "건강한 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에 따라서 자녀들이 자라 가정을 이뤄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면서 "성 역할을 배우기도 전에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젠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젠더 뉴트럴이 거대한 소비문화로 흡수되면서 가정이나 교회에서 마땅히 대항할 카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건강한 성 역할에 대한 교육과 양육이 중요한 이유다.
 
백 원장은 "건강하고 건설적인 성역할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게 될 때 우리 자녀들이 건강한 성 담론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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