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에는 각자의 경전이 있다. 그런데 개신교만큼 자신들의 경전을 사랑하는 종교는 찾기 힘들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계보를 잇는 개신교에서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인간의 기록물일 뿐이며 또한 틀릴 수도 있다고 한다면? 한 유대인 예언자를 따른 소수의 초라한 무리가 어떻게 오늘날 기독교로 발전했는지 신약 하나하나를 역사비평의 시각으로 파헤친 <신약 읽기>를 살펴봤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신약 27권 중 13권을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데일 마틴은 그 가운데 7권만 저자가 바울로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초기 두루마리 형태에서 '코덱스' 발달로 오늘날의 형태 갖춰져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경 본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둘러싸고 2,000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수많은 연구와 논쟁들은 계속되고 있다. 성경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공고히 자리잡아온 것은 이처럼 기독교인들의 성경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성경이 여느 책과는 달리, 사람의 손으로 쓰여지기는 했지만 철저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성경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금기어와 같다.
 
그럼 이러한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성경을 읽는다면 어떨까. 미국 예일대학교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는 ‘신약 개론’은 성경을 성스러운 글이 아닌 역사적 문헌으로 접근한다. 예일대 종교학과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신약학자이기도 한 데일 마틴은 그의 저서 <신약 읽기>에서 종교의 권위를 걷어내고 역사책이자 기록물로서 접근했다.
 
그는 초기 두루마리 형태로 각지를 돌던 문서들이 지금과 같은 27권의 책으로 신약에 포함될 수 있었던 과정에 먼저 의문을 제기한다. 27권은 어떻게 선택되었을까?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을까? 1~2세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글들 중 어떤 책은 성경에 포함되고 왜 어떤 책은 포함되지 않았을까?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는 '신학 개론'의 내용이 담겼다.


3세기까지 일반적인 책의 양식은 두껍고 큰 두루마리였다. 그래서 예컨대 복음서의 특정 구절을 살펴보려면 두루마리를 상당히 많이 푼 다음 찾아보고 다시 말아놓아야 했다.

그런데 기독교가 시작될 무렵 두루마리를 하나하나의 낱장으로 잘라 함께 꿰매 묶는, 즉 오늘날 책의 형태인 ‘코덱스’라는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데일 마틴은 이 과정에서 책에 ‘넣을 것’과 ‘뺄 것’을 확고하게 결정할 필요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쓰인 시기와 예수와의 근접성 △교리와 신학 △전반적 활용도와 지리 등과 같은 기준으로 초기 문서들을 분류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대다수 교회에서 27권의 신약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동방정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제외한다. 신약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면 더 들쭉날쭉하다. 천주교 공동번역 성서 등은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의 내용이 더 길고, 마카베오 상·하와 집회서 등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취급하는 책들이 경전에 들어가있다.

이처럼 개신교와 천주교, 유대교가 각기 나름의 글 묶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데일 마틴은 성경이 ‘정통 그리스도교를 정의하는 역사적 논쟁에서 승자가 된 책들의 목록’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자료 통해 구성한 '역사적 예수', 실제로 있었던 예수와는 달라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3년여의 공생애 기간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은 예수의 역사적 실제성에 대한 것이다.

이에 데일 마틴은 오늘날 남겨진 자료를 통해 역사적 예수를 구성하기에 나선다. 하지만 그는 그에 앞서 먼저 역사학의 이론적 한계를 지적한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말 또는 행동을 했다고, 혹은 '○○주의자'라는 확신에 찬 주장들이 제기되지만, 역사적 예수를 구성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주장할 때 그것은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예수’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적어도 인간의 방식으로는 우리는 이 예수에게 어떤 식으로도 다가갈 수 없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를 ‘실제 예수’나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의 예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그는 신앙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도 덧붙인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은 오늘날 역사학으로 확증할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는 다만 역사학의 통상적인 방법을 이용해 예수라는 사람이 1세기에 살았고 죽었다는 개연성을 확증할 수 있을 뿐, 하나님과 신학적 예수는 역사학적 분석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역사학자도 확고하게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역사적 사실은 존재한다. 바로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한 것이지, 어떠한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데일 마틴은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이 세상에 세울 날이 임박했다고 가르쳤을 뿐,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무엇을 세우거나 세워질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는 하나님이 매 분기점마다 교회가 섭리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됐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인간적·역사적 측면에서 얽히고 설킨 역사가 만들어낸 것임을 분석해나가는 데일 마틴의 주장과는 일면 충돌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성경을 바라보는 폭을 넓히는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해당 내용이 수년 간 예일대학교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며 수많은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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