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38) 씨는 얼마 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두통이 잦아지면서 급기야 응급실까지 찾았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는 검사 결과가 못 미더웠고 혹시 오진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TV 건강 프로그램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뇌종양 초기 증상이 자신의 증상과 일치해보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곧바로 휴직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료와 갖가지 검사를 반복했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진단만 되풀이됐다. 얼마 후 박 씨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질병불안장애)'이었다.
 
 ▲건강염려증이 심한 경우에는 사회생활이 힘들고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pxhere
 
건강염려증도 질병…심한 경우 치료해야
 
서울대학교병원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은 건강을 계속 걱정하고 경미한 증상에도 중병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박 씨처럼 두통 같은 한가지 증상이나 혹은 여러 가지 증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걱정한다. 병원을 자주 방문하여 진료와 검사를 받으며, 결과가 정상으로 나와도 자신이 중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 소견을 믿지 않고, 절망감이나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중병이 생겼다는 공포와 믿음에 사로잡혀 인간관계, 직장·사회생활 등이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 국민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건강염려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공개한 'OECD 보건통계 2018'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인은 과체중·비만 비율이 낮고 기대수명도 82.4세로 OECD 평균(80.8년)보다 1.6년 길었다. 그럼에도 정작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은 32.5%로 OECD 평균(68.3%)보다 낮았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발생한 건강염려증 환자는 총 1만 6,068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한 해 동안 병원에서 건강염려증(상병코드 F452)으로 진단받은 환자도 총 3,817명이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21%로 가장 많았고, 50대(19%), 40대(18%), 70대(13.7%) 순으로 뒤를 이었다.
 
건강염려증 발병원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린 시절 중병을 앓았거나 중병환자와 가까이 접촉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 신체감각이 예민하고 통증 역치가 낮은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및 불안·강박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요인이 되어 생기기도 한다. 건강염려증 발병은 특정 연령대나 성별에 집중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화로 건강에 이상신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50~60대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데 어떻게 이상이 없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만약 오진이면 어떻게 하냐"고 진단자체를 불신하기도 한다. 전문의들은 "병원을 찾기 전부터 이미 중병이라고 확신한다"거나 "정상 진단을 받았는데도 여러 차례 비슷한 진료와 검사를 받는다"면 건강염려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증상 가운데 "아예 병원을 불신하거나 적대시해 내원을 꺼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건강염려증 의심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 및 인지·행동치료 등을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삼성서울병원은 "건강염려증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원인과 병명을 찾아내는 데 집착하지 말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효과적인 약물치료나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담을 꾸준히 받아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환자의 생활습관 개선도 필요하다. 건강을 걱정하거나 집착하는 행동을 삼가고, 운동이나 취미 등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몰두하는 것이 좋다.
(위클리굿뉴스 9월 2일, 39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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