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개발했던 우리나라는 스스로 ‘인쇄종주국’임을 자랑한다. 이러한 자존심을 증명하듯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의 내용을 저술한 고려말 승려 백운화상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친필 문건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충남 청양군 소재 장곡사가 소장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의 내부에 보관됐던 사리나 경전, 발원문 등 복장(腹藏) 유물에는 백운화상의 친필 발원문이 포함돼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은 지난 2∼5월 ‘붓다의 탄생-불복장’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백운화상의 친필 발원문을 외부에 처음 공개했다.
 
백운화상은 현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 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의 저자다. 학계에서는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쓴 백운화상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백운화상은 1372년(공민왕 21년) 역대 조사승려들의 법어와 어록 등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 직지 2권을 편찬했다.
 
백운화상이 입적한 후 3년 뒤인 1377년 그의 제자들이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한 것이 바로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의 저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백운화상이 1346년(충목왕 2년) 홍색 비단에 작성한 이 발원문은 폭 48㎝, 길이는 무려 10m58㎝에 달한다.
 
발원문에는 무병장수를 바라는 고려인들의 염원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발원자들의 이름도 나열돼 있는데 무려 1,078명이나 된다. 1,000명이 넘는 발원자 이름이 적혀 있는 발원문은 고려시대 유물 중에서도 이것뿐이다.
 
청주시는 오는 10월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을 앞두고 조계종단과 협의, 이 발원문 원본이나 복제품을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우리의 ‘인쇄종주국’ 자부심과는 달리 우리의 금속활자는 거기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더한다.

초조대장경을 비롯한 우리 고서들과 구텐베르크의 활판성경 등 다양한 고서들을 수집해 온 고서수집가 화봉책박물관 여승구 대표는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활판인쇄술을 보유했던 우리의 경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 인해 당시의 사상들을 온 백성들이 통용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됐으나, 실제로 이 활판과 한글이 민초들의 구석구석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지배계층에서 금속활자를 활용해 국민계몽을 주도하기보다 소수 엘리트를 양산하므로 왕정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즉 서양보다 몇 백 년 먼저 위대한 발명을 해놓고도 사회 전반에서 제대로 활용을 못했기에 오늘날 우리의 금속활자는 단지 ‘쇠도장’으로 저평가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뛰어난 인쇄술이 사회 밑바닥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당시의 우리사회는 유럽의 종교개혁이나 르네상스와 같은 문화혁신이 일어났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 전래도 훨씬 앞당겨져 구한말과 일제 시대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거치지 않았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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