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봉 칼럼]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십자가복음의 유업 4

여주봉 목사(포도나무교회)

등록일:2018-04-09 13: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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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하반부만 하더라도 신약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유업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유업은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질 때 주어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의 교회는 철저하게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교회의 기초가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포함되어 있다. 교회는 철저하게 믿음으로 맘미암는 의를 의지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여주봉 목사 ⓒ데일리굿뉴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려면, 우리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다 추가로 할례를 받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된다는 유대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율법주의적인 거짓 복음과 대조해서 참다운 복음의 혹은 참다운 성도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열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나열한 참다운 성도의 세 가지 특징은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 그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이 구절은 복음과 관련해서 참다운 성도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는 구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으로 봉사하며” 혹은 “성령으로 예배하며”라는 말은 여기에 나올 필요가 없는 말이다. 개역개정 한글성경에 “봉사하며”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라트류온테스’라는 단어로써 유대인들의 공적인 예배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 단어이다. 그래서 NIV, ESV 등 많은 영어 성경들이 이 구절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라고 번역하고 있고, 오늘까지도 많은 경우에 공적인 예배를 영어로 “service(섬김)”라고 부른다. 참된 복음에 대해서 말하는 이 구절에서 전혀 나올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라는 말이 참다운 성도의 특징 중 하나로 언급될 뿐 아니라, 그것도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드리는 참다운 예배가 참다운 복음을 위해서도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잘 볼 수 있다. 사실, 참다운 신앙과 참다운 예배 혹은 참다운 복음과 참다운 예배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도록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는 참다운 예배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반대로 성령으로 예배하는 참다운 예배가 드려지기 위해서도 참다운 복음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이 둘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나머지 두 가지 특징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난 의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핵심적인 것들이다.  
우선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서 ‘자랑하다’는 말과 ‘신뢰하다’는 말을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을 믿는 것 혹은 신뢰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말 대신에 같은 의미로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참다운 성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 “그리스도 예수를 신뢰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지 않는 것.” “그리스도 예수를 신뢰하고 육체를 자랑하지 않는 것.”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려면 혹은 의지하려면 반드시 육체를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해서 육체를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 이 부분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육체를 신뢰하면 혹은 육체를 자랑하면 그것은 전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그 당시의 “손할례당”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자들을 사도 바울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강력하게 정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어떤가? 우리는 말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외치지만 성도들이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온갖 세상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것들이다.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이 교회 안에서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이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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