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기껏 정리된 이해를 헝클어 놓는 일들은 자꾸 생기기 마련이고, 어떤 사건은 충격과 공포까지 수반하기도 한다. 특히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누렸던 안정감과 편안함이 언제든 부서질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 삶에 대한 모든 이해가 무너지는 고통을 겪는다. '난민'도 그렇다.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이슬 ⓒ위클리굿뉴스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이 달라서, 또는 소수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폭력을 경험해야 하는 사람들. 이 중 약 3만 명은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다. 그러나 난민인정 받은 것은 단 790명으로 인정 받지 못한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또 다시 어딘가로 떠나야 했다(1994~누적). 게다가 난민으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삶이 회복의 시작점에서는 것도 아니다. 난민 인정자들은 외국인이고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다시 차별이라는 폭력에 맞닥뜨린다. 한국에서의 삶은 끝없이 복잡하고, 이전의 삶과 다시 연결될 수 없을 만큼 고되다.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난민신청제도를 운영한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한국에도난민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시리아 내전 이후로 채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난민이 누구인지', '한국의 낮은 난민 인정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국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등을 묻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난민이라는 현상이 인간의 배타성과 타인을 짓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기는 오만, 지배와 통제를 향한 욕망 그 자체에서 비롯함을 이해하고, 한국이 그 잔인한 현실을 끊어내는 곳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 상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 각자의 삶에 일어나듯이, 지금도 우리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들이 세계 어디선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쫓기듯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러니 결코 쉽지 않았을 난민들의 삶을 두고, 먼저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사람들의 판단이 쉬워서는 안 된다. 난민의 경험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기에 거짓일까? 그들의 고통은 그저 '남의 것'일 뿐일까? 우리는 얼마만큼 그 고통에 반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가 누군가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는 곳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삶으로 답해줄 누군가들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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