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목사ⓒ데일리굿뉴스
지금 대한민국은 미투운동으로 시끌시끌하다. 거기다가 미투운동을 지지하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한 정치인이 성폭행의 가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그는 성폭행이 폭로되기 11시간 전, 도청 직원들 500명을 대상으로 30분 동안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박수 갈채를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이중적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중 인격의 끝판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는 진짜와 가짜, 진품과 짝퉁의 구분이 어려운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서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진심인지 아닌지, 사람 마음의 진위를 가늠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 언덕 너머에서 달려오고 있는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아니면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별이 안되는 상황을 빗대는 속담이다. 진짜와 가짜가 뒤엉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지금의 대한민국을 묘사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과연 누가 개이고 누가 늑대일까?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일까?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은 한문으로 보면 글자 순서만 바뀌었지 둘 다 똑같이 집을 나간다는 뜻이다. 비슷한 것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왜 출가는 복되게 보이고, 가출은 어리석게 보일까? 그것은‘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집을 떠나면 출가가 되고, 목적도 없이 현실을 피하려고 집을 나가면 가출이 된다.
 
세상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것이 참으로 많다. 다이아몬드와 큐빅은 비슷하게 생겨서 얼른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된다. 그러나 가격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곡식과 가라지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곳간에 들어가지만 가라지는 불에 태워진다. 양과 염소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심판 때가 되면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서게 된다.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를 사이비라고 한다. 좋은 것일수록 가짜가 많다. 그래서 사이비 의사가 있고, 사이비 종교가 있다. 그런데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기도 해서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이비의 생명은 짧다.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언젠가는 그 실체가 탄로 나고 만다.
 
어떤 사람이 위폐 감별사에게 물었다. ‘요즘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위폐가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구별하나요.’감별사가 대답했다. "진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가짜를 걸러내려면 진짜를 잘 알아야 합니다. 너무 화려하면 일단 수상한 지폐로 분류합니다.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민 흔적이 역력하지요.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안 그래요. 진짜 지폐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종교가 거기서 거기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종교는 다 같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남의 종교를 깎아 내리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14: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4:12>
 
로마 가톨릭과 우리 개신교회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무슬림들이 말하는 알라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다. 죽음도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과 그리스도 없이 죽은 사람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시편 116장 15절에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부활도 그렇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들만 부활하는 것 아니다. 누구나 부활한다. 요한복음 5장 29절의 말씀처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영생도 그렇다.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만 부활하여 영생하는 것 아니다. 악인이나 의인이나 모두 영원히 사는 것은 같다. 그러나 영원한 형벌, 영원한 심판을 어떻게 영생이라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마25:46절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악인들은 영벌에 들어가리라고 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예수 믿은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원이 살지만,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서 영원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속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구별할 줄 아는 지혜이다. 속지 말자. 하나님 앞에서 살자. 하나님 의식하고 눈치 보며 살자. 결국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는 것이다. <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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