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곪던 상처가 결국 터졌다.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66)의 성추문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촉발된 '미투 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사회도 미투에 잠시 동참하는 듯 했지만, 관심은 이내 사그라져가는 듯 잠잠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폭풍전야에 불과했다. 한 여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미투에 현재 한국 사회 전역이 들끓고 있다.
 

 ▲세계여성의 날(3월 8일) 기념해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동성민 기자 ⓒ위클리굿뉴스


터질 것이 터졌다 

"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여자의 머릿속엔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뱅뱅 돈다. '사회가 그랬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부당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또박또박 이야기해온 여성들도 있었다'는 취지의… 역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나.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내가 역시나 잘못이었나…" - 서지현 검사
 
지난 1월 말,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은 미투의 서막을 열었다. 서 검사는 본인이 작성한 글처럼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것을 토해냈다. 그가 "결코 내 잘못이 아닌 것"을 깨닫는데 8년이 걸렸다. 심지어 그는 현직 검사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다. 한국 사회가 감춰온 추악한 이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미투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학계, 의료계, 정재계, 체육계 등 미투가 뻗치지 않은 분야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이 가운데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파문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안 지사는 미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정무비서를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져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천만요정' 오달수, 연기파 배우 조재현, 젠틀하고 가정적인 이미지의 조민기 등 대중의 사랑을 받던 배우들의 연이은 미투 폭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처음 미투 폭로로 제기된 성추문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은 또 다른 피해 여성을 분노시키며 새로운 폭로를 촉발시켰다.
 
이 외에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 시사만화의 거장 박재동 화백,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과 오태석 등 전 국민의 존경을 받던 예술인들의 추악한 민낯은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성범죄가 문화예술계에 얼마나 뿌리 깊고 만연했는지 대변한다. 미투 폭로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현직 천주교 신부의 성추문 폭로는 사회에 더 큰 충격을 가했다. 수원교구 소속 한 모 신부는 지난 2011년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남수단에 파견돼, 당시 선교 봉사활동을 온 봉사단의 일원이던 여성 신도 김 씨를 성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김 씨는 7년여 동안 피해 사실을 숨기고 홀로 고통 받고 있다가 최근 미투에 용기를 내 이 사실을 공개했다.
 
파문이 거세지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 2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제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 대주교는 이날 신부들의 성범죄 사실을 철저히 확인해 교회법과 사회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예정이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 김 씨는 미투 공개 이후 수많은 유언비어 양산으로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기획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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