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종교인의 증가

작년 말에 발표한 인구센서스 종교부문에서 나타난 한 가지 특징은 무종교인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인구센서스에서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국내 인구 비율은 전체의 56.1%로,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43.9%)보다 10%p 이상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종교 없는 사람이 종교 있는 사람을 추월한 것은 통계청이 종교 유무를 조사하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최초다. 작년 종교 없는 인구는 2005년 2182만 6000명에서 지난해 2749만 9000명으로 9%포인트 급증했다. 나이별로는 20대가 64.9%로 가장 높았고, 이어 10대(62%), 30대(61.6%), 40대(56.8%) 순이었다. 종교 인구 감소 폭은 40대(13.3%p), 20대(12.8%p), 10대(12.5%p)에서 상대적으로 컸다.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이렇게 무종교인의 수가 늘어난 것은 조사 방법상 우리 사회에서 가구형태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난 인구센서스 인구 부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대표 가구가 4인가구가 아닌 1인 가구로 나타났으며, 2인 가구의 비율도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인구센서스 조사에서는 가구의 대표가 응답을 하기 때문에 4인 가구 중심이었을 때 다른 가족의 견해 속에 묻혔을 수도 있는 종교 없는 사람들이 1인 가구나 2인 가구 형태에서는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방법 상의 문제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최근 개신교의 가나안 성도나 가톨릭의 냉담자와 같은 비활동 신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성 종교가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 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불교는 일 년에 한 두 번 절을 찾아도 불교인으로 볼 정도로 종교 수행이 훨씬 더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무종교 또는 탈종교인의 증가는 20여년 전부터 미국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어왔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성 종교에 실망한 사람들이 제도 종교를 떠나 개인적으로 영성을 추구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20대에서 무종교인이 가장 많다는 것은 취업이 어렵고 삶의 여건이 팍팍한 이들에게 종교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종교인이 많다는 것을 단순히 전도할 대상이 많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종교인가 아닌가

이렇게 무종교인이 많게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구센서스의 종교 조사가 종교 단체 가입 여부로 종교인을 파악하는 데서 나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서도 다양하게 종교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거나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종교 없는 인구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중층적 종교인 곧 하나의 종교에 동일시하지 않고 여러 종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종교인 통계에서는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결과로 전세계 인구의 80% 이상이 종교인인 것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알려진 한국에서는 오히려 종교인이 50%가 채 안되는 것으로 측정되는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기존 통계 조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종교인 또는 종교성 측정 지표의 개발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현대 종교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척도이다”라는 말은 한국 종교를 연구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한국인의 종교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에 한국에 왔던 초기 여행자나 선교사들은 한국에는 종교가 없고 미신만이 있을 뿐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종교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연구하는 태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유일신적 종교 사상에 기초한 개념 정의를 가지고 동양의 종교를 평가하게 되면 동양종교는 유일신교가 아니기 때문에 종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교이다. 유교가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오래된 논쟁이다. 유교는 언뜻 종교처럼 보이지만, 종교의 중요한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인 초월적 존재나 내세관이 매우 빈약하다. 조상신을 섬기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초월신은 아니며, 제사를 잘 지내고 조상신을 잘 섬긴다고 해도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공자는 “삶의 문제도 모르거늘 하물며 죽음 뒤의 문제이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를 할 때 자신의 종교를 유교라고 답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교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유교적인 가치들을 열거하고 동의하는지를 물었는데 응답자의 90퍼센트 이상이 동의를 한 결과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종교를 말할 때 유교적 개신교, 유교적 천주교, 유교적 불교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 대부분이 신도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신도를 종교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참석한 동아시아종교사회학회(홍콩침례대학교에서 개최)에서 한 일본 학자는 이 문제를 다루어 주목을 받았다. 신도는 일본 고유의 민족 신앙으로,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 종교라기보다는 국민 신앙 또는 민속 신앙이라고 말한다. 일본 어느 지역에나 가면 신사가 있고 심지어는 집안에도 신사를 두고 절을 하고 있지만, 종교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학회를 주관한 미국 퍼듀대 펭강 량 교수는 “민속 종교라는 것은 비서구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 민속 종교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았는가? 이것은 서구인들이 비서구 사회에 대하여 규정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특정 종교는 없으면서도 일본인 대부분이 신도를 신봉하는 것이 일본에서 선교를 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신도를 받아들이고 있어서 신앙생활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종교의 의미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종교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 정확하게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개신교인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신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여러 다른 종교의 색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한국갤럽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윤회설이나 해탈설을 믿는 개신교인의 비율이 불교인의 비율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충격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종교들은 모두 지나치게 현세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무릇 종교는 현실 너머의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종교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제공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종교들은 한결 같이 현실에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기복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사람들의 의식이나 태도 또는 행위의 측면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종교에 호감을 갖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개신교의 우월함을 주장하기보다 개신교 신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개신교 신앙을 이용하기보다 본래 개신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 5백주년을 기념하는 올해에 개신교 전통이 바로 세워지고 각각의 개신교인들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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