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평화를 위한 평화로운 통일

조용훈 교수(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l 등록일:2017-02-21 16: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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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훈 교수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가안보와 일자리를 강조하는 반이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강대국들은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한다.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아시아의 맹주로 나서면서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도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경제도 안보도 확보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이 틀림없다.
 
시인 고은이 언젠가 문학 행사에 초청받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갔나보다. '리스본 이후'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 먼 낯선 곳에서조차 군사적 불안을 걱정해야만 하는 슬픈 분단국 국민의 운명을 한탄했다.
 
"파두의 밤길이었습니다/ 돌아온 호텔 객실 TV/ CNN도 BBC도/ 온통 북한 핵문제였습니다/ 여기까지/ 여기 이베리아 반도까지/ 십년 뒤에도 물고 늘어질/ 나의 운명 한반도의 난제가 와 있습니다/ 끌끌 혀를 찬다고 될 노릇이 아니었습니다/ 아, 언제나 비정치적일 수 있을까/ 언제나 음식타령이나 하고 날씨타령이나 하고 축구타령이나 하고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통일은 평화로운 방법이어야 하며, 평화를 위한 통일이어야 한다. 평화 없는 통일이라면 비록 통일국가를 이루었더라도 다시 갈등과 분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은 평화로워야 하며, 통일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통일운동은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통일기도회는 곧 평화기도회여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금 폭력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 구조적 폭력과 다양한 형태의 갑질을 경험하고 있다.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언어는 거칠고 행동은 파괴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주차시비나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은 끔찍한 살인으로 비화되곤 한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화내는 것조차 살인이라 하셨고, 정당한 복수조차 포기하라고 요구하셨다. 분노는 내면의 평화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파괴한다. 예수님은 분노만 아니라 멸시와 경멸, 혐오의 언어도 비판하셨다. 괴뢰, 종북좌빨, 수구골통, 전부 다 경멸과 혐오의 언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셨다.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만나든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교회 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평화운동은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노력이다.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고,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조용한 행동이다. 평화를 힘쓰는 사람은 우선 마음의 평정을 힘써야 한다.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은 공격행동으로 표출된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남한이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도 다 내면의 불안 때문이다. 평화를 힘쓰는 사람은 사회정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참 평화란 정의로움이 맺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불의에 기초한 평화는 강요된 질서, 곧 거짓평화다. 불의한 사회구조는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가져다 주고, 그 절망감은 평화를 해치는 분노와 폭력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통일을 기도하는 교회는 평화를 구하는 교회이며, 평화의 교회는 각 개인의 내면의 평화로움을 가져다 주며, 사회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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