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데일리굿뉴스
미디어는 메시지이다.(Medium is Message) 캐나다 출신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이 설파한 개념이다. 1960년대 초반 펴낸 ‘미디어의 이해’라는 저술에서 그는 이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미디어의 내용은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기술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즉 모든 미디어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다. 감각 기관의 확장으로서 모든 미디어는 그 자체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미디어가 달라지면 그 메시지도 달라지고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인식 방식도 달라진다.’
 
‘마셜 맥루한’이 저작 활동을 했던 시기는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TV 토론의 중요성이 강렬하게 부각됐던 시점과 맞물려 있다.
 
젊고 잘 생기고 말 잘 하는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후보가, 찡그리는데 익숙하고 눌변이고 식은땀을 흘리는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압도했던 그 TV 토론이다. 미국인들의 열광적 지지 속에 당선된 케네디는 대통령 임기 중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대낮에 암살당하며 미국인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전 세계가 ‘슈퍼 파워’ 대통령의 피살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슬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석 달 뒤, 영국의 4인조 그룹 ‘비틀스’가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하던 날, 뉴욕 공항은 떠들썩한 환영 인파로 넘쳐 났다. 케네디의 갑작스런 죽음이 남긴 슬픔은 뒷전으로 밀리고 ‘비틀즈 열풍’이 일었다. 슬픔과 환호가 교차하는 그 시기의 중심 미디어는 텔레비전이었다. ‘마셜 맥루한’은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반세기 전 처음 등장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개념은 시대를 관통해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인터넷과 1인 미디어가 지배하는 요즘 세태에 더 맞는 정의인 것 같다.
 
비틀스를 흠모한다는 한국의 7인조 그룹 BTS가 2019년 미국 지상파 텔레비전 CBS의 인기 프로그램 ‘ The Late Show’에 출연했다. 비틀스가 1964년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던 ‘에드 설리반 극장’에서 열린 ‘에드 설리반 쇼’에서 BTS는 비틀즈를 ‘오마주’했다. 진정한 비틀즈 헌정 무대였다. 55년 전 비틀즈의 미국 상륙 때처럼 ‘코리안 팝의 미국 상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BTS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다시 유엔을 찾았다. 세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는 청년 세대 대표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방문에 동행하는 형식을 취했다. TV로, 인터넷 언론으로 매일 매일 그들의 동정이 국내에 전해졌다.
 
문 대통령의 소개로 시작한 BTS의 유엔 총회장 연설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멤버 7명이 코로나 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극복기를 전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임을 거부한다면서 새 시대를 여는 ‘웰컴 제너레이션’(환영받는 세대)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설은 10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지켜봤다. 유엔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뮤직 비디오 ‘퍼미션 투 댄스’는 이틀 만에 조회 수 1200만 회를 넘어섰다.
 
BTS의 활약과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도 크게 조명됐다. ‘남북한 종전 선언’, 미국·중국· 북한의 협력과 동참을 호소했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30주년인 때이기도 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울림은 작지 않았다. 북한이 반응했고 미국도 긍정 평가했다. 성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언젠가는 가야 할 평화의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BTS가 뉴욕에 머무는 추석 연휴 기간, 국내에서는 국민의힘 대권 선두 주자인 윤석열 후보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 출연진에게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는 등 소탈한 면모를 보여줬다.
 
덕분일까?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프로그램 출연 전 보다 상승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윤 후보의 뒤를 이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난 26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물 흐르듯 유연한 말솜씨로 출연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다음 주에는 이낙연 후보 부부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다. 여야 대권 후보 중 지지율 4위인 홍준표 후보는 지상파 방송사 초청 예능프로그램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다른 종편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단다.
 
사실 정치인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1996년, ‘이경규가 간다’라는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젊은 층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이미지 변신을 모색했다. 안철수 후보 역시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정치권 입문의 터를 닦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킴으로써 지지도 상승이나 이미지 변신을 위한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1년 넘게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외부활동이 줄고 TV 시청률이 높아지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활용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1년 전 추석 때는 지상파의 ‘나훈아 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더니 이번 추석엔 가수 심수봉이 등장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상황을 어느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
 
다만 예능은 예능일 뿐 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마셜 맥루언’의 탁견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예능이 곧 메시지는 아니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정치적 현실과 오락으로서 예능을 구분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은 없다.
 
 

[송기원 언론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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