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칼럼] 고난까지도 감사함으로

이영훈 위임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등록일:2020-11-15 10: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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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목사 ⓒ데일리굿뉴스
요즘 어느 신문, 어느 방송을 봐도 감사를 고백할만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귀에 들리는 소식들은 우리를 두렵고, 우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벌써 10개월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약 5,00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약 130만 명이나 생겨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이뤄질 때까지 현재의 확산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연쇄 작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그렇다고 사회 다른 분야에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빈부의 격차는 오히려 심해지고, 정치권의 권력 다툼도 여전하다.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데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서민들의 신음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요구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감사에있다.

그런데 주변에 고난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하고 무리한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감사가 어떠한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감사가 일종의 감정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특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다.

‘감정’으로서 고난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한 거짓된 모습일 것이다. 감사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좋은 일이 다가올 때나,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나 감사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감사로 그 일에 반응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감사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40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청교도들이다.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자리엔 분명 지금 우리가 마주한 어떠한 고난에도 비교하기 어려운무겁고 힘겨운 고난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원주민과 야생 동물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무려 44명의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로 사망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녀들, 부모,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 해 곡식을 뿌려 수확한 뒤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감사한 것은 단지 수확물에 대한 것만 아니었을 것이다. 농사일에 서투르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들이 거둔 수확은 감사하기엔 너무 적었다. 그들은 여전히 굶주렸으며, 혹독한 추위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과 상황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사의 태도는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부터 나온다.

오늘날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정책이나, 새로운 기술, 막대한 지원이 아니라 400년 전 선조들이 소유했던 감사의 태도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서 고난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 매몰돼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지 말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의 태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빛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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