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 ⓒ데일리굿뉴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비대면 사회로 전환된 지도 벌써 7개월이 넘어갔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삶에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상은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물론 여전히 보완돼야 할 문제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과학 기술과 정치, 경제 체제는 비대면 사회를 잘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가 유지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단절됐다고 느끼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최근 부쩍 ‘연결’이라는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연결에 대한 욕구가 큰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기존에 있는 많은 연결의 수단들이 제한을 받게 되자 연결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커지고, 애써 외면하고 억누르던 단절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의 고통이 표층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기를 바라고, 연결돼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온라인 기술이 우리를 연결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은 사람들이 지리·언어·문화적 장벽을 넘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온라인 기술은 그저 관계의 장을 만들어 줄 뿐 실제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 없다. 온라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려는 많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단절과 고립의 상태에 빠지고 있다. 관계는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잘못된 마음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잘못된 관계,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면 그 관계는 금방 깨어지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된다. 잘못된 마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욕심이다. 욕심으로 연결된 관계에선 절대로 만족을 누릴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욕심은 같을 수 없고, 서로의 욕심이 틀어지는 순간 연결이 깨어진다.

고린도전서 5장 3절을 보면 바울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의 문제를 판단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갈등을 겪었다.

만약 바울이 관계를 욕심으로 맺으려고 했다면 고린도교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잘못을 꾸짖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칭찬하고 인정해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지지를 구하는 대신 성령의 뜻을 그들에게 전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아도 끝까지 그들에게 나아가 주님의 마음을 전달했다.

바울이 성령으로 그들과 관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끝까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길 힘쓰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일에 힘을 쓴다.

비대면 시대, 단절의 시대라지만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면 상황의 한계를 넘어 견고하게 연결될 수 있다. 성령은 시공간 그리고 개인의 욕심을 뛰어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만든다. 바이러스로 인해 물리적 단절된 공간에도, 깨어진 관계로 인한 감정적으로 단절된 마음에도 성령은 교회를 연결해 하나 되게 하신다.

교계 일부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으로 인해 신앙이 약해지고, 교회가 흔들리게 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 인간의 연약한 마음으로 교회의 문제와 연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크신 성령의 시선으로 하나 돼 굳게 세워진 교회를 바라봐야 한다.

이 땅의 교회가 먼저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연결되고, 불안과 염려 가운데 지쳐있는 사람들을 참 편안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진실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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