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영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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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달 표면 같았던 한국의 산이 푸르게 바뀌었다.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은 인류가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유엔환경계획(UNEP) 잉에르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50년째를 맞는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다”라고 치켜세운 건 40년 전이다.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저서 ‘플랜(Plan) B 3.0’(2008)에서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인 성공 모델이며, 한국이 성공한 것처럼 지구도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민둥산 천지였던 한국이 빼곡한 숲을 자랑하는 세계 4대 산림 강국으로 우뚝 섰으니 이 같은 찬사를 받을만하다. 산림과학원은 우리나라 숲이 주는 공익적 가치를 260조 원(2020년 기준)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성공한 산림정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이 절대적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공적 때문에 산림정책은 가려질 때가 많았다.

1964년 말 서독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선진 서독에서 굵직한 정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우토반을 달리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구체화했고, 울창한 숲을 보고 산림 녹화사업을 다짐했다.

광복 후 제1공화국은 식목일을 제정하는 등 산림녹화사업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정용 연료의 80%가 목재였다. 땔감 조달 때문에 산에 나무가 배겨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산림마저 대부분 파괴됐다.

박 전 대통령은 월드뱅크가 제공한 식목 지원금으로 묘목을 사는 대신 석탄과 시멘트 탄광을 개발했다. 월드뱅크 입장에선 자금 전용처럼 보였지만, 땔감용 나무를 석탄으로 대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1967년 산림청을 설치해 본격적인 식목과 조림 사업을 추진했다. 1971년 국립공원이 지정되고, 도시 근처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은 그린벨트를 시행했다. 그린벨트는 훗날 난개발을 제어하는 ‘신의 한 수’였다.

1973년부터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한 사업은 5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도벌(盜伐)을 마약이나 밀수처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제했다. 산림청은 1973년 치산녹화 계획을 수립한 이래 50년 동안 10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것으로 집계했다.

조선시대부터 산림 조성을 위해 입산을 통제하고,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제도적 허점도 많았다.

조선 초기부터 성저십리(城底十里·한성부 사대문 주변 10리 지역)를 지정해 구역 내 매장과 벌목을 금지했다. 사산금표(四山禁標)는 도성 근처에 있는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 등을 출입 금지 지역으로 설정하고 소나무 벌목, 토지 경작, 채석 등을 막은 제도이다.

17세기 중반 소빙하기가 닥쳐 효종 재위(1649~1659) 때 온돌이 보급됐다. 땔감용 나무를 구하느라 산림이 급격히 훼손돼 벌거숭이산으로 변했다. 숙종 재위 때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금송정책(禁松政策)을 실시했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 일대(현 서울 혜화동)가 듬성듬성 하자 나무를 심었다.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 후 현륭원(顯隆園)이라 칭하고 인접 지역에까지 대대적인 식목을 지시했다.

현륭원 조성을 마친 후 정조는 다산 정약용을 불러 “7년 동안(1789~1795) 8읍(수원·광주·용인·과천·진위·시흥·안산·남양)에 심은 나무 장부를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로 많은데, 나무의 숫자는 얼마인지 아직도 명백하지 않으니, 번거로운 것은 삭제하고 간략하게 간추려서 명백하게 하되 1권이 넘지 않게 하라”고 명했다.

다산은 7년 동안 모두 12차례에 걸쳐서 식목했으므로, 가로로 12칸을 만들고, 여덟 읍에 심었으므로 세로로 8칸을 만들어 보고서를 작성했다,

1칸마다 그 수를 기록하고 총수를 계산한 결과, 소나무·노송나무·상수리나무 등 모두 1,200만 9,772그루였다.

요즘의 ‘엑셀’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정조는 다산의 천재성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다산의 형인 정약전은 ‘송정사의’(松政私議·소나무 정책에 대한 사견)라는 저서를 통해 당시의 산림정책을 비판했다. 다산은 자신의 ‘목민심서’에 이를 여러 차례 인용했다.

정약전은 국토의 6~7할이 산지이고, 모두 소나무 자라기에 알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무를 심지 않고, 저절로 자라는 나무를 꺾어 땔나무로 쓰고, 화전민은 불태운다고 지적했다. 소나무 생육 조건이 좋은 바닷가로부터 30리까지 벌목을 금지한 것 등을 외려 패착으로 꼽았다.

결국 공급 부족으로 소나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집을 짓지 못하고, 관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장례를 치르는데 애를 먹었다. 특히 전함 건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왜구의 침략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약전은 벌채 금지 정책 대신 나무를 심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랜 노력 끝에 온 국토를 푸르게 가꾸었지만 인위적인 난개발과 기후변화, 산불은 늘 위협요인이었다. 그나마 그린벨트 덕분에 무분별한 개발을 통제할 수 있었다.

개발사업 등으로 지난 30년간 여의도 면적의 256배에 달한 741㎢ 산림이 사라졌다. 식생의 질은 개선된 것으로 평가돼 다행이다.

개발과 보존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최근 개발보다 보존 쪽으로 무게 추가 쏠리고 있다.

바로 ‘자연자원 총량제’ 추진이다. 보존해야 할 자연자원의 양을 정한 뒤 개발 사업을 꾸준히 감시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자연자원이 훼손될 경우 즉시 복구해 자연자원의 총량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96 개국이 2022년 제15차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전 관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정부는 보호 지역 외에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하면서 관리하는 ‘자연공존지역’(OECM)을 발굴해 목표를 채울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보호 지역은 육상 17.3%, 해양은 1.8%에 불과하다.

환경단체는 환경부와 산림청의 유기적인 업무 협조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보호구역 지정을 통한 강력한 규제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최근 비수도권 지역의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자연자원 총량제를 추진 중인 국제 흐름과 대비된다. 그린벨트 해제는 즉흥적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 신중해야 할 정책이다. 우리나라가 산림 강국으로 도약한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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