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영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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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진열대에 놓여있는 탐스러운 사과를 이리저리 살피며 망설인다. 한 개당 4,000원을 웃돌아 사과 값이 ‘금값’이다.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하고 살며시 내려놓는다. 미련은 남지만 결국 발길을 돌린다. 요즘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과뿐 아니다. 거의 모든 과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사과 값은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무려 71% 올랐다. 올 1월과 비교해도 10%가량 상승했다. 귤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78.1%, 배는 61.1% 뛰었다. 복숭아는 63.2%, 감은 55.9% 각각 오르는 등 고공행진 중이다. 과실 물가 상승률은 40.6%로 1991년 9월(43.7%) 이후 3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 결과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0%가량 줄었다. 고령화 등으로 사과 재배 농가가 소폭 감소한 원인도 있지만 사실상 이상 기후 때문이다. 사과 작황에 결정적인 지난해 5~7월의 기온이 낮은 데다, 잦은 비로 생산량이 줄었다. 봄철 냉해로 꽃눈이 마른 현상은 치명적이었다.

사과는 일교차가 클수록 당도가 높아진다. 밤 기온이 서늘해야 한다. 그런데 경남 거창, 경북 안동, 청송 등 사과 주산지의 밤 기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야간에도 고온이 지속되는 열대야가 자주 발생했다.

10여 년 전부터 사과 주산지가 영남지역에서 강원도로 북상했다. 최근 강원 정선에서 재배된 사과가 경북 산(産) 사과 못지않게 비싸게 팔린다는 소식이다.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과육이 단단할뿐더러 빛깔도 곱게 나와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달 전남 담양 지역에 115㎜의 비가 내렸다. 전국 평균보다 세 배가량 더 내린 수량이다. 담양과 멜론 주산지인 나주지역 일조 시간은 각각 115시간으로 최근 10년 평균 일조 시간보다 35% 감소했다.

빨갛게 익어야 할 딸기에 잿빛 곰팡이 병이 퍼졌다. 햇빛을 보지 못한 멜론은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다. 수정·착과 불량 등으로 출하량은 16%나 줄었다.

경남 함안지역의 강우량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고, 일조량은 20% 이상 줄었다. 습도 상승과 일조량 부족으로 이 지역 수박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경남 도의회는 태풍이나 우박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할 경우 적용된 ‘농작물재해보험’의 범위 확대를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일조량 부족에 따른 작황 부진도 기상 이변으로 간주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겨울 유독 비 오는 날이 많았으며, 큰 추위도 없었다. 강우일과 강수량이 역대 최다·최고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기온은 두 번째로 높았다.

기상청이 발표한 ‘2024년 겨울 기후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 겨울철(2023년 12월~2024년 2월) 전국 강수량이 236.7㎜로 관측 이후 가장 많은 양을 기록했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래 한 해 평균 강수량은 89㎜이다. 평년에 비해 2.7배 많이 내린 것이다. 강수일수 또한 31.1일(평년 19.5일)을 기록하며 가장 많았다.

전국 평균기온은 2.4℃로, 2019년(2.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과거 30년 평균값인 평년(0.5℃)에 비하면 1.9℃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2월 평균기온은 4.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남해안의 평균 해수면온도 역시 15.9℃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서해의 겨울철 해수면온도는 7.8℃로 남해나 동해보다 낮았지만,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우리나라 전 해역 겨울철 평균 해수면온도는 12.3℃로 2019년(12.8℃)과 2016년(12.6℃), 2018년(12.5℃)에 이어 네 번째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북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고, 활발한 대류 영향으로 상층 고기압이 형성됐고, 북동 방향으로 대기 파동이 전파돼 우리나라 동쪽에서 고기압성 순환이 유도됐다”며 “이 순환으로 우리나라에 따뜻하고 습한 남풍류의 바람이 유입돼 기온이 높았고, 강수량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북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우리나라의 기상이변과 연동된 사실이 확인됐다.

겨울부터 초봄 사이 장맛비 수준의 비가 내려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상승하는 기후변화로 인해 과일 농가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런 변화는 농작물 작황에 악영향을 줄뿐더러 삶의 질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로 국민들은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시급히 개선해야 할 환경문제’가운데 첫 번째로 꼽았다. 또 구체적인 환경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환경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환경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일반 국민(1,501명)과 환경 관련 전문가 (504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환경보전에 관한 국민 의식조사’ 결과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운데 96.3%는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일회용품을 계속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 응답자의 94.2%가 동의했다. 정부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환경문제로 지구온난화·기후변화(31.6%)를 가장 많이 꼽았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 및 건의 사항으로 일반 국민은 환경교육 및 홍보 강화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23.9%). 전문가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환경 정책과(21%) 환경교육 및 홍보 강화(18.5%) 순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학교·직장·사회단체 등에서 환경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일반 국민은 27.4%에 불과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환경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환경문제 해결에 노력하는지에 대한 평가에서 환경단체(85.5%)가 1위였으며 일반 국민(70%)이 뒤를 이었다. 중앙정부(66.2%), 지방자치단체(66.1%), 기업(51.6%), 국회·정당(39.2%)은 뒤로 밀렸다.

정부 등 기후 위기 극복을 선도해야 할 주체는 뒷전이고, 환경단체와 평범한 국민들이 앞장선 모양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분발과 각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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