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이다. 성탄절이 되면 동정녀(童貞女) 탄생의 신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동정녀 잉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여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다.생물학적으로 동정녀 탄생의 가능성 여부를 질문할 일이 아니다. 이런 질문은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무지의 소치다.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면서 동시에 창조에 참여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오실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대책이신 주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신 이 신비
‘정보 선점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과 현상에 대한 견해가 두 가지 이상일 때 먼저 받아들인 정보가 그 사람의 견해가 된다는 것이다.우주 만물과 생명의 출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바로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생명현상을 화학적 진화라는 자연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의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를 특수 창조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진화론은 자연적 무신론적 견해다. 반면 창조론은 초자연적, 유신론적 견해다. 진화론은 물질원소들이 원시 지구 위에서 오랜 세월을
태초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반경 100억 광년이나 되는 이 대우주를 창조하셨다. 1광년은 약 10조 Km 거리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1,000억 조 Km나 되는 반지름을 가진 큰 세계이다.이 큰 공간 속에 크고 작은 별들을 또 천 억 조 개나 만들어 배치해 놓으셨다. 이 천체들 가운데 태양계를 구성하는 별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놓으신 보데의 법칙과 케플러 법칙에 따라 제각기 자기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따라 운행하고 있다.보데는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n번째 행성의 평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최근 어떤 분의 출사(出仕)와 관련해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지 달포가 지났다.그 여파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필자는 그 분야에 식견이나 경험이 없어 뭐라고 견해를 말할 형편은 아니다. 그런데 TV를 시청하지 않아도, 신문을 읽지 않아도 그 이야기는 저절로 귀에 들려온다.또한 이런저런 견해도 어느 새 ‘책이나 읽고 본연의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내 공간’에 비집고 들어온다.그러면 이런 소리는 어떻게 전달될까? 소리를 내는 발음체가 진동하면 주위의 공기가 압축과 팽창을 되풀이하면서 발음체의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창 1:4~5상).빛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인정하신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어두움은 죽음과 상통하고 빛은 생명과 상통하기 때문이며 또한 어두움은 무질서와, 빛은 질서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거나 “빛의 창조가 어두움이 그 본질인 혼돈 즉 카오스(Chaos)에 대한 반동적 사역임을 표현”이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빛은 혼돈을 질서에로 수습하는 하나님의 상징이고, 어두움은 질서를 혼돈으로 되돌리려는 하나님의 적대자”로 보
어느 날 아침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흔적, 그리고 창조과학 관련이라며 연락을 달라는 문자가 휴대폰에 남아 있었다. 통화가 이루어졌을 때 전화의 주인공 집사님은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성경 기록은 어찌되느냐?”고 질문했다. 집사님의 질문의 배경은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천체가 60억 개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말이 사실이면 어떻게 하느냐?”였다.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서 과학자들이 찾고 있는 외계 생명체가 실재한다면 성경과 외계 생명체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신앙인으로서의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빛의 기원에 대해 초기 태양이 형성될 때의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이거나 대폭발 당시의 초기 우주의 에너지에서 찾으려는 관점(아시모프와 비슷한 관점)에서 창세기 1장 3절의 빛을 태양 자체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그들은 대개 해와 달과 별이 1절에서 이미 형성됐는데, 당시 지구 대기권의 상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3절에서 빛이 나타나 낮과 밤이 구분되고, 마침내 창조 제4일에 완전하게 보이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완성된 광명이 창조되기까지 ‘해’는 어두운 천체로 존재한 것이 되므로, 창세
만일 빛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밝은 낮에 보는 세상도 아름답지만 밤에 보는 세상은 더 아름답다. 하늘의 별빛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거리의 불빛들은 실로 우리를 경탄케 한다. 부산의 상징물의 하나인 광안대교가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빛의 조화이다.모든 물상들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빛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우선 생명체들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빛이 있기에 세상이 있다고 말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생물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양분의 공급이
사람의 몸은 물이 1~2% 정도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5% 정도가 부족하면 거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며, 12% 정도가 부족할 경우 생명을 잃게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다 물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물은 우리들의 생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태교, 1991).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동서양의 고대 신화와 철학은 물을 생명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고, 만물의 근원으로 말하기도 한다.물의 속성 중 가장 기본이 사물을 깨끗하게 하는 작용이다. 그 세척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공중에 떠 있기도 하고, 지면을 덮고 있기도 하다. 아니면 지하에 묻혀 있기도 한다. 모양도 액체 상태이거나, 고체 상태는 물론 기체 상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한 곳에 멈춰 있을 줄도 알고 흘러내릴 줄도 아는가하면 하늘로 올라갈 줄도 안다.공중에서는 수증기로 구름으로 공기의 흐름을 따라 자유자재로 하늘을 누빈다. 지하에서도 갑갑해 하지도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는다. 조용히 스며들기도 하고 용솟음치기도 한다. 지면에서는 실개천이 되기도 하고, 큰 강이 되기도 하고, 넓은 바다를 이루기도 한다. 경우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