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응렬 칼럼] 보이지 않는 빛을 향해 걷는다

2025-11-24     류응렬 목사
        ▲류응렬 목사ⓒ데일리굿뉴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해바라기는 단순히 병 안에 담긴 꽃 그림이 아닙니다. 작가의 힘겨웠던 삶, 햇살, 사랑, 죽음과 자아까지 나타내며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엿보게 합니다. 

이렇듯 예술 작품은 그 자체 보다 그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C.S. 루이스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순전한 기독교'에서 한 말입니다. 

“나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믿듯이 기독교를 믿는다. 해를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해로 인해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우리에게 자주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구름 뒤에 숨기도 하고, 새벽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동녘에 햇살이 떠오르면 온 산천의 색깔이 드러나고, 길 위의 그림자가 태양의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습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폐를 채우고, 중력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사랑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지키며, 한 인간의 일평생을 흔들어 놓습니다. 

조용한 새벽에 깨어나 홀로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문득 보이지 않게 내 삶을 이끌어 온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신뢰했던 이유,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게 했던 힘, 낙심 중에도 이상할 정도로 다시 일어서게 했던 용기. 이 모든 것은 어떤 형태도 색채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거대한 울림으로 우리 삶을 움직여 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주님의 빛 앞에서 수없이 그분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평범하게 읽던 말씀이 어느 날 내 마음을 흔들고 들어오는 순간, 기도 중 이유 없이 차오르던 눈물, 절망의 골짜기에서 갑자기 길이 열리던 경험.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나의 삶을 비추는 빛입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바울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 강조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성경의 가르침도 루이스의 말도 우리를 향한 조용한 초대처럼 들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말라. 세상을 비추는 빛을 보라.” 아름다운 가을날에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을 마음에 깊이 모시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이 지나가듯이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면 남모를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힘을 얻고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은 내 안에 진정한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