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연필에서 AI 명령어로…쓰기와 도구는 어떻게 변할까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역서울284서 '한글 실험 프로젝트' 전시
"사각이 된 연필이 조금씩 천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를 써주세요. 당신의 모국어로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SF(과학소설) 작가 김초엽은 최근 상상했다. 한글이 아주 먼 미래에 등장한 '특수한' 쓰기 도구에 유리하다면 어떨까.
그는 사고 언어를 한글로 표출하도록 설계된 인공의식 '네모'를 떠올렸다. 그리고 잊고 있던 쓰기 감각을 되찾는 여정을 짧은 소설 '사각의 탈출'로 담아냈다.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가 책이 아닌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국립한글박물관이 한글과 디자인을 주제로 선보여 온 한글 실험 프로젝트의 5번째 도전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를 통해서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19일 개막하는 전시는 쓰기와 도구에 주목했다.
문자를 매개로 한 쓰기의 힘은 어떠한지,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도구가 쓰기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한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들의 글은 물론, 시각·공예·미디어아트·설치 작품 등 139점을 모았다.
박물관 관계자는 "연필에서 AI까지 문자와 예술의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자의 감각을 깨우는 다양한 시도에 주목해달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들머리에서 만나는 '기대고, 붙잡히고, 매달리고, 휘둘리고'는 김초엽·김영글·김성우·전병근 작가 4명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쓴 글을 소개한다.
글자를 담는 그릇인 책의 속성을 표현한 설치물을 통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연필, 만년필, 노트 등을 만들거나 모으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음 쓰이는 쓰는 마음', 연필을 재해석한 작품인 '함께 쓰는 즐거움' 등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AI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로봇이 붓으로 키보드와 패드를 눌러 생성형 AI에 움직임을 입력하고,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기획향' 작품은 한글과 첨단 기술의 만남이 돋보인다.
감정과 생각을 한글 단어들로 나열하면 이를 조합해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미디어아트, 손 글씨로부터 속도, 방향 등 여러 정보를 얻어 변환하는 설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작품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설명 판이 있어 도움이 된다.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를 위한 묵점자책도 함께 준비했다.
강정원 국립한글박물관장은 "글자와 도구가 만들어내는 질감을 느끼며 글자 속에 잠시 머물러보는 사색의 기회를 가져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2일까지.
출처=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