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재앙 '자살'…한국 사회 허리마저 무너졌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上] 자살자 13년 만에 최다 전 연령층 자살률 상승세 경제활동 핵심층까지 확산

2025-10-09     최상경 기자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년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남겨진 가족과 이웃은 또 다른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서로의 삶에 무심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조용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자살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주한 사회적 재난이 됐습니다. 이 심각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있을까요.생명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사회의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 예방을 위한 '한 번만 더' 동상이 설치돼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데일리굿뉴스] 최상경 기자 = 하루 38명. 이만큼의 사람들이 오늘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는 1만4,872명으로 전년보다 6.4%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40대의 주요 사망 원인이 처음으로 암을 제치고 '자살'이 된 것이다.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이제 자살은 더 이상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가정을 떠받치는 '경제 허리층'마저 무너지고 있다.

(사진출처=AI 생성 이미지)

40대 자살률, 암 사망률 제쳤다

10대부터 40대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동안 자살은 10~30대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40대와 50대까지 번지고 있다.

40대 자살 비율은 지난해 26.0%로 암(24.5%)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30대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30.4명)은 1년 새 14.9% 증가했고, 40대(36.2명)는 14.7%, 50대(36.5명)는 12.2% 상승했다.

실직과 채무, 정년과 이혼, 돌봄과 고립. 중장년 자살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경제적 압박에 더해 관계의 단절과 정신적 고립이 겹치면서, 삶의 끈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와 실업, 자영업자의 폐업은 이런 절망을 가속시켰다.

박종익 강원대 교수는 "경제활동 인구의 자살률이 급등한 것은 생계 문제와 사회 구조의 압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며 "실직·채무·정년·이혼 등 복합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최명민 백석대 교수는 "중장년 자살은 개인의 절망이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며 "경제 구조와 가족 시스템이 동시에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한강대교 보도 난간에 자살예방 문구가 새겨져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제도보다 절실한 건 '생명 존중 문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최근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발표하며 10년 내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 부처별 대응 강화와 자살예방관 지정 등의 대책도 내놨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실효성 있는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시키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자살을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타인의 안녕에 조금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살은 결코 '예고 없는 죽음'이 아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의 99%가 생전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를 인지한 주변인은 20%에 불과했다.

34살 오유식(가명) 씨는 연대보증으로 떠안은 4,500만 원의 빚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 했으나, 마지막 통화를 한 지인의 신고로 생명을 건졌다. 그는 "살고 싶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며 "한 사람의 관심이 생명을 살린다"고 말했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리 현상"이라며 "우리 사회는 가족의 건강은 묻지만, 마음의 안녕은 묻지 않는다. 이제 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 대표는 "생명의 가치를 앞장서 지켜온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이 돼야 한다"며 "교회가 게이트키퍼(자살예방 파수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에 지친 사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공동체에서 자살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죽음'이 돼버렸다. 이제 필요한 건 무관심의 거리 두기가 아니라, 관심의 거리 좁히기다. 누군가의 침묵 뒤에 숨은 신호를 읽어내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 시급하다. 이제 이 인사는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누군가의 생존이, 가족의 삶이 걸려 있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