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이산가족 상봉…그리움 안고 10만명 세상 떠났다
[이산가족의 날] 추석 명절 더 가슴 아픈 이산가족 상봉 7년째 중단…남은 3만명도 80%가 고령 남북 대화 단절에 인도적 문제도 교착
[데일리굿뉴스] 정원욱 기자 = 가족을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다 끝내 눈을 감은 이산가족 신청자가 10만 명에 육박했다. 남북 대화가 멈춘 지 오래인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은 7년째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0월 4일 이산가족의 날'을 맞아 단절된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정치적 해법과 인도적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 8월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13만4,489명이다. 이 중 9만9,178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생존자 3만5,311명 가운데 66.5%가 80세 이상 고령층이다. 설령 상봉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건강 문제로 대면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1985년 첫 상봉 이후 실제로 만난 가족은 약 4,700가족, 2만4,000여 명에 불과하다. 전체 신청자의 극히 일부만 상봉 기회를 가졌고, 마지막 상봉은 2018년 8월 금강산에서 이뤄진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어지지 않았다.
상봉 중단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대북 제재, 군사적 긴장이 겹쳐 있다. 남북 간 대화 통로가 막히면서 인도적 사안마저 정치·안보 국면에 묶인 상태다.
최근 금강산 관광지구 내 이산가족면회소도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지난 7월 위성사진을 통해 면회소 옥상 구조물이 철거돼 내부가 드러난 모습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2008년 완공된 이 건물은 다섯 차례 상봉이 열린 상징적 공간이었다.
설상가상 북한은 남북관계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7월 담화에서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정부는 화상상봉센터 개소,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대책을 내놨지만 북한의 비협조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화상상봉은 북한이 응하지 않아 시작조차 못 했고, 유전자 DB는 북측 가족의 생존 여부 확인이나 유전자 정보 확보가 불가능해 남측 자료 축적에만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산가족과 탈북민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정치·군사 문제와 별개로 인도적 대화 통로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광민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는 "남북 교류가 끊긴 상황에서 이산가족 문제만 따로 떼어내 논의하기 어렵다"며 "남한은 인도적 문제로 접근하지만, 문제 핵심은 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지 않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시간이 많지 않은만큼 탈북민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며 "이산가족은 행정안전부, 탈북민은 통일부 소관인데, 정책을 일원화해 함께 다뤄야 지속적으로 이슈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관심을 돌리려면 결국 북·미 관계에서 돌파구가 열려야 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날 의지를 밝힌 만큼 회담이 성사된다면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교회가 이산가족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의혁 숭실대 통일지도자학과 교수는 "교회와 교계 단체들이 통일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산가족과 같은 실질적인 과제는 외면한 채 구호 수준에 머무를 때가 있다"며 "이산가족 문제는 통일 담론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매개점이 될 수 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이산가족의 아픔에 귀 기울일 때, 통일도 실현 가능한 과제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