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약 먹었을 뿐인데…” 약물 복용 운전, 어디까지가 범죄?
공황장애·ADHD 약 복용자도 단속 대상… 처벌 기준 불명확 운전 가능 여부 고려 약물 분류 및 환자 맞춤 안내 체계 필요
[데일리굿뉴스] 김신규 기자= 마치 ‘연예인 병’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유명인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질병 공황장애. 지난 5월 별세한 배우 최정우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달 골프선수 홍정민은 크리스에프앤씨 제47회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2023년 초에 자율신경계 기능 장애와 공황 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숨진 가수 휘성 역시 우울증과 공황장애 및 불면증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상습 프로포폴 투약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배우 김수미의 일기를 엮은 책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에서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고 남겼다.
2015년 개그맨 정형돈은 불안장애를 호소하며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비롯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개그맨 김구라도 공황장애로 2014년 입원했으며, 배우 차태현도 2010년 공황장애 투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무대에 서면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숨을 쉬기 어려웠다. 미국서 행사 도중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911에 실려가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유명 공인들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지난 11일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환자 수는 24만7,061명으로 2019년(18만2,725명) 대비 35% 증가했다. 환자 중 여성이 56%로 남성 44%보다 많았고, 연령별로 보면 40대가 25%(6만4,000여명)로 가장 많았다.
공황장애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복용하는 약물 가운데 일부 향정신성의약품은 마약류로 분류되기도 하며, 처방 없이 복용하거나 복용 후 부주의하게 운전할 경우 형사책임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8일 개그맨 이경규(65)가 약물 복용 후 다른 사람의 차를 몰았다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약물 운전 혐의가 드러났다. 물론 그의 소속사는 "(이경규가) 공황장애 약을 10년 넘게 먹고 있어 약물 검사에서 향정신성 의약품이 하나 검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경규의 사례처럼 공황장애나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음에도약물 복용 운전으로 인해 범법자로 몰릴 수 있는 것이다.
주요 향정신성의약품과 위험성
공황장애는 물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우울증 등에 사용하는 약물인 향정신성의약품은 우리 두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데, 이 약물들을 서로 병용하거나 단독으로 사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먼저 공황장애 치료에 자주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계(알프라졸람, 로라제팜 등), SSRI(파록세틴, 세르트랄린 등) 등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자주 취급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문제는 벤조디아제핀계는 복용 시 졸림 증상과 의존성의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장기 복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복용 후 운전은 금물이다.
벤조디아제핀계는 정신과 처방 외에도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 구토와 구역질 증세, 심한 기침을 진정시키는 용도로도 자주 사용되는 만큼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현재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로는 항불안제인 로라제팜, 클로나제팜, 디아제팜, 알프라졸람 등이 있다.
SSRI는 초기에 불안감이 오히려 심해질 수 있어 천천히 복용량을 늘려야 한다. 약물의 위험성 때문에 갑자기 복용을 중단하면 금단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알코올과 병용할 경우 호흡억제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DHD 치료를 위한 약물로는 자극제 계열의 메틸페니데이트(콘서타, 메디키넷)과 비자극제 계열의 아토목세틴(스트라테라)가 있다.
자극제 계열의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할 경우 불안과 불면, 식욕감소와 심박수 증가 증세가 나타난다. 따라서 심혈관질환자는 특히 처방과 복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공황장애까지 있는 ADHD 환자는 불안 증세가 악화될 수 있어 의사의 신중한 처방이 필요하다.
비자극제 계열의 약물은 복용에 앞서 간 기능 검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약물 복용 후 우울감이나 자살 사고 증가 가능성도 보고되는 만큼 복용 초반의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우울증에는 SSRI와 SNRI(둘록세틴, 벤라팍신), TCA(삼환계 항우울제·아미트립틸린, 클로미프라민, 이미프라민, 노르트립틸린) 등의 약물이 있다.
우울증 약은 환자가 효과를 볼 때까지 2~4주가 소요된다. 따라서 즉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약물들은 복용 초기 불면·불안증세가 복용이전보다 증가할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약물을 병합해서 치료할 경우 중복처방을 피하는 것이 좋다. 정신과 약물은 의사들 간의 정보공유가 필수인 만큼 여러 병원보다 한 병원에서 통합진료가 권장된다. 약물 복용시간의 경우 아침에 좋은 것과 저녁에 좋은 것 등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시간대별로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약물을 시간대에 맞춰 복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해당약물을 임의로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한 후 점진적으로 감량하는 것이 좋다.
또한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금주를 해야 한다. 아울러 약물 복용 후 불면, 과수면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수면습관을 체크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신의 증상 변화나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해 정기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며, 약물은 타인이 잘못 복용하지 않도록 별도의 안전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할 경우에는 절대로 바로 운전석에 앉아서는 안 된다. 특히 의사나 약사는 해당 약품이 약물특성상 마약류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과, 복용 후 운전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을 고지해야 한다. 환자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짚어야 한다.
향정신성의약품 복용 규정 마련 시급
실제로 전문가들은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했을 때 ‘복용 후 몇 시간까지 운전을 해선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 마련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영국과 독일은 해당 약물 복용 후 24시간, 호주는 12시간 동안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교통법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따라서 국내의 경우 대부분의 정신과 약물이 법적 ‘향정신성의약품’에 포함되지만, 일반 진료에서 흔히 처방되는 항우울제, 항불안제, ADHD 치료제는 운전금지 약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다. 이로 인해 경찰 단속이나 행정조치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한 운전자가 사고를 내도, 알코올처럼 수치화된 측정 방법이 없어 ‘증명’이 쉽지 않다.
또한 우리나라는 환자나 보호자가 약물 복용 후 운전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약국에서 조제할 때도 운전 관련 주의 고지가 체계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이외에도 제약사나 의료기관에서 주의 사항을 안내하지만 단순히 ‘운전을 피해 달라’는 문구만이 안내돼 있을 뿐 실제로 복용 환자들은 구체적 위험도나 지속시간, 대체 약 정보 등 구 체적인 안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의료계 일부에서는 환자 직업을 고려하면서 운전 가능성까지 고려한 처방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사고 후 약물 영향과 사고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따라서 약물 종류별 운전제한 약물 목록을 명확히 고시하고 법적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법령 정비와, ‘이 약 복용 후 ○시간 이내 운전 금지’ 등 명확한 문구 기입 의무화, 약물 영향 평가 체계를 구축하며, 약물운전의 위험성과 사고 사례를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등의 관련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또한 단순한 ‘금지’보다 운전 가능 여부를 고려한 약물 분류 및 환자 맞춤 안내 체계가 속히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