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 악순환 고리 끊어야…"교회 마음돌봄 역할 절실"

[신년 인터뷰]②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

2025-02-04     이새은 기자

편집자 주 = 2025년 한국 사회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기 둔화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중독 문제 심화와 저출산·고령화 가속화, 자살률 급증까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도 산적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데일리굿뉴스는 신년을 맞아 기독 전문가들과 여러 사회 현안을 살펴보고 기독교적인 해법을 모색해봤다.

▲지난달 16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를 만났다.ⓒ데일리굿뉴스

[데일리굿뉴스] 이새은 기자 = 38.3명. 하루 동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숫자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만3,978명으로, 전년 대비 1,072명(8.3%) 증가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자살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재앙 같은 문제이지만 너무 일상화돼 이제는 무감각해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이 '자살 공화국'으로 불린 건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00년대 초반부터 OECD 평균의 두 배를 초과했다. 이후 한국의 자살률은 20년 넘게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조 대표는 "경제적으로는 발전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성과로 평가받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사회가 병들었다"며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늘어났지만, 정서적인 기반이 뒷받침 되지 않은 현실에 자살률이 점점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자살률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유보된 자살'이 발생하는 데다 내수 경제 상황까지 악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폐업 등 직접적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66.0%가 올해 경영 상황이 더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 대표는 "심리적 문제는 경제와 직결돼 있다"면서 "코로나 때만 하더라도 특수상황에서 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코로나가 지나갔는데도 재정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이어지니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숫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작년 1월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자살유가족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 중인 조성돈 대표.ⓒ데일리굿뉴스

이미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매김했음에도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미비하다는 게 조 대표의 지적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담론은 자취를 감추고 성공신화들만 줄을 잇는다. 내세를 향하는 종교가 가장 조용한 역설이다. 

조 대표는 "이 땅에서 풍요롭게 사는 번영신학이 교회에서 부각되면서 죽음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죽음조차 터부시하는 상황에서 자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어렵다. 금기나 다름없는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특별히 그는 주변인의 자살이 또다른 죽음으로 이어지는 연쇄고리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공동체의 돌봄과  관심이 필요한데, 조 대표는 교회의 역할을 여기서 찾았다. 

조 대표는 "아직도 교인이 자살하면 유가족이 교회를 떠나도록 암묵적으로 유도하는 일이 벌어진다"면서 "오랜 시간 공동체로 함께한 교인들이 갑자기 선을 긋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유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조 대표는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살 유가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바랐다. 

이를 위해 그는 유가족과 함께 세미나와 국회 토론회, 서명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지난달 국내 최초로 자살 유가족이 주체가 된 '한국자살유족협회'가 발족되는 값진 성과를 얻었다. 

조 대표는 "유가족들이 오랜 시간 목소리를 내며 자살 방지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탄핵정국으로 관련 논의가 '올스톱' 돼버렸다"며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나설 적기"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제이드409에서 열린 '한국자살유족협회 창립총회'.ⓒ데일리굿뉴스

교회의 구체적 역할을 묻는 질문에 조 교수는 교회 내 목회자와 리더들의 '생명 감수성'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자살 예방을 위한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만 제대로 해도 자살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돼 지역사회와 함께 자살 예방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일화를 언급하며 교회의 사명을 상기시켰다. 

"최부자 집안에는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문의 철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없도록 교회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직접 뛰어야 합니다. 자살자가 지옥에 갔는지 논쟁하는 것보다, 위험군과 유가족을 돌보고 위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