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교회 장면.(더글로리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교회 장면.(더글로리 캡처)

"사라야, 정말로 넌 신이 있다고 생각해?
"너 지금 신성 모독이야. 당장 회개해. 천벌받기 싫으면"
"응. (눈을 감았다 뜬다) 방금 하나님이랑 기도로 합의 봤어. 괜찮으시대. 
(다시 감았다 뜨며) 잠깐만, 너네 주님 개 빡쳤어. 너 지옥행이래."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오는 대사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세상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날 교회가 보였다. 

요즘 핫한 드라마에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빠지지 않는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지옥', '수리남' 등이 그러했다.   

최근 친구가 하루를 반납하고 '더 글로리'를 봤다며 몇 번을 추천하기에 못이기는 척하며 봤더니,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상징이 많이 등장했다.

드라마는 '한(恨)'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형 복수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를 실행해가는 게 드라마의 줄거리다.

흔히 복수를 다루는 작품은 복수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얼마나 고통받느냐'에 초점을 맞추지만, '더 글로리'는 가해자들 앞에 펼쳐지는 비극들로 쾌감을 끌어내기 보다는 오랜 시간 사력을 다해 복수를 준비해 온 피해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드라마에서 폭력의 가해자들은 절대악으로서 한결같이 악을 표상한다. 피해자인 동은(송혜교 분)이 용서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복수의 대상으로서 완벽한 악으로 기능한다.

극중 가해자 중 한 명이 목회자의 딸로 나오는데, 크리스천인 나로서는 계속 눈길이 갔다. 그는 새벽기도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성가대 봉사도 하는 등 외형적으로 매우 신실한 자매다. 그러나 알고보면 학교폭력의 가해자이자 마약 중독자다.

"왜 굳이 저런 설정을 한거야!" 나는 작가가 옆에 있기라도 한 듯 항의했다.

하지만 볼수록 심한 몰입을 하고 말았다. 내가 동은이라도 가해자의 이중적인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 작가는 이런 반응을 원했는지 모른다.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무늬만 크리스천이거나 신앙인이라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얼마 전 한 신학대 교수와의 대화에서 "기독교 비하 콘텐츠가 많아지는 건 어쩌면 세상이 교회에 말을 걸어오는 것"이라 했던 말이 기억난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대답을 통렬히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넷플리스 제공)
(넷플리스 제공)

늘 그랬듯 드라마 속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잊은 채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 반면 피해자의 삶은 상처로 얼룩진 그때에 멈춰있다.  

극중 문동은이 "연진아, 내 소원이 뭐였는 줄 아니? 나도 언젠가는 너의 이름을 잊고 너의 얼굴을 잊고 어디선가 널 다시 만났을 때 누구더라? 제발, 너를 기억조차 못 하길"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삶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일상인 일도 동은에게는 트라우마의 트리거가 된다. 카메라 플래시는 학폭 증거사진을 남기는 기억을, 삼겹살을 굽는 소리는 온몸에 화상을 입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웃음조차 조심스럽다. 자꾸 웃다 보면 자신이 다짐한 복수를 잊어버릴까 싶어서다. 이런 묘사는 폭력의 경험이 피해자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설명에 가깝다. 

동은을 '복수'로부터 구원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동은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교사도, 경찰도, 심지어 엄마도. 법 역시 동은 편이 아니다. 결국 동은은 살기 위해 '복수'라는 꿈을 설계한다. 빛이 없는 길이란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가고 만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동은은 폭력의 가해자였던 친구 박연진(임지연 분)을 찾아가 "내 꿈은 너야"라고 말한다. '꿈'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되는 모순. '영광'이라는 의미의 '더 글로리'라는 제목은 그래서 '복수의 끝에는 어떠한 영광도 없을 것'이라는 반어다. 영광이 없을 복수의 끝을 그리고 있기에 '더 글로리'는 더 잔인하고 먹먹하다.

누군가의 잔인한 폭력은 그 형태가 어떻든 피해자에게 깨어진 영혼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 피해자들이 이후에 살아가야 할 다음의 삶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곁을 내주고 회복을 돕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쉽지 않더라도 상처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겠다. 가해자이자 방관자인 '더 글로리' 속 크리스천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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