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언론인

    ▲송기원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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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면서도 찾지 못한 명소들이 많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인 만큼 근교에 유명한 산도 많지만 가 본 곳은 몇 군데 안 된다. 산뿐만 아니라 도심에 있는 명소들도 안 가본 곳이 꽤 된다. 개방된 청와대도 그 중 하나다. 현역 기자 시절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자주 다녔던 탓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방문객이 1백만 명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와대를 찾아가 볼 생각을 갖게 됐다.

도봉산은 늘 지나치기만 했다. 서울에서 의정부를 갈 때마다 바라볼 수 있었다. 광화문 앞을 거쳐 우이동과 수유리를 통과해 의정부를 갈 때면 여인의 치마폭 같다는 도봉산 정상의 앞자락을 볼 수 있었다. 우뚝 솟은 화강암 봉우리들이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서울 서북쪽 끝에서 외곽 도로를 타고 송추 쪽을 거쳐 의정부로 향하는 길을 선택할 때도 여러 개의 암봉을 볼 수 있었다. 도봉산의 뒤태 역시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반원형 암벽이 일품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하프 돔’ 못지 않은 외관에 언젠가 가보리라 생각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집에서 도봉산 입구 까지는 1시간 넘게 걸린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산행을 미뤄오다 드디어 날을 잡았다.

멀리서 보는 모습과는 달랐다. 시내버스 종점을 지나 도봉산으로 가는 길은 유독 등산용품 상가들이 많았다. 그 길을 거치야 산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썼다는 바위 속 글씨 ‘도봉동문’이 반긴다. 도봉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의 뜻에 더해 도봉계곡의 초입임을 알리는 표지석이기도 하다.

입구를 조금 지나면 광륜사라는 절을 만난다. 조선 말기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권력자들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헌종의 어머니로 철종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된, 신정왕후 조대비의 여름 별장 터다.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만들어 대원군의 시대를 열어준 조선 말기 숨은 권력자다. 대원군도 이곳에 머무르며 국사를 논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륜사를 지나 계곡을 옆에 두고 걷는다. ‘문사동’ 계곡이다.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논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고 바위에는 유학자들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대비나 대원군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여겨지는 정자 ‘가학루’, 현판마저 잃은 외양에서 지난날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가학루’ 주변에서 바위에 새긴 글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용주담’, 작은 폭포의 이름이다. 이끼를 머금은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5 미터 정도나 떨어질까. 여전히 아름답다. 폭포에서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이 구슬을 찧는 것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필동암’, 황하는 만 번을 꺽여 흐르지만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을 가진 ‘만절필동’에서 따온 말이다. 명나라를 향한 사대주의 사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우리 역사의 단면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제일동천’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하늘 아래 제일의 계곡이란 뜻이다.

계곡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도봉서원 터를 만난다. 조선시대 전·후기 최고의 유학자 정암 조광조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서원 터이다. 도봉서원 터를 경계로 시인 김수영의 시비가 서 있다. 서원 터를 발굴하면서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는 어떤 이의 표현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6·25 전쟁 때 의용군으로 징집됐다 탈출했지만 경찰에 체포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기구한 운명의 시인 김수영, 그의 시 ‘풀’의 싯귀가 거기 적혀 있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자기 고백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는 김수영의 시는 보다 노골적일수록 좋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 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도봉서원 바로 앞 계곡에는 ‘고산앙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물에 약간 잠겨 있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학문과 덕을 사모하는 뜻을 담아 유학자 김수증이 쓴 글이다, 뫼 산(山) 자를 쓰면서 세로 획마다 뾰족하고 두툼하게 산처럼 그려 놓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런 바위 글씨가 계곡 곳곳에 10여 개가 새겨져 있단다,

도봉산은 이처럼 우리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산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이 크게 손대지 않고 자연을 보존한 보람이라고나 할까. 오르막 내리막길에 외국인 등산객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곳도 이채로웠다. 우리 주변에 이런 곳이 비단 도봉산 뿐일까?

청와대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청와대를 개방한 뒤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정부는 건물 원형을 보존하면서 문화·예술을 접목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할 뜻을 밝혔다. 본관과 관저는 미술품 상설 전시장, 영빈관은 미술품 특별 기획 전시장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미술관’ 이라는 말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청와대 본관 앞 녹지대는 종합 공연예술무대로 만들겠다고 한다. 광복절에 앞선 특별공연으로 정부의 구상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 가을에는 청와대에서 특별 전시회도 열린다고 한다.

청와대 활용 계획을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고려시대부터 권력의 터로 여겨진 청와대의 역사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성을 지키면서 국민이 향유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청와대에 어떤 문화재와 유적이 있는지 조사한 적도 없다. 청와대 활용에 앞서 문화재 관리 차원의 기초 조사 연구가 더욱 충실하게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청와대와 더불어 부근의 북촌, 서촌, 미국 대사관 자리였던 송현동 부지까지 연계해 서울 도심의 명소로 개발할 계획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연결 통로도 오랜 공사 끝에 드디어 복원된 터이다. 일제 강점기에 끊어진 길을 되살린 역사의 현장이다. 광화문 광장도 조만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서울 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병존하는 관광 명소로 기능할 것이다. 그것도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는 거리에 말이다.

여기에 청와대 외곽을 둘러싼 북악산, 도봉산을 껴안고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까지 함께 어우러진다면 관광 서울의 가치는 더 없이 커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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