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주 한인 방송사 현장을 가다- ③ 워싱턴D.C. 한인방송사 편

오늘의 한류 콘텐츠가 이른바 ‘K-컬처’로 세계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문화 개방이 발단이다.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전격적으로 허용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세계 진출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한국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한국드라마가 세계인의 인기를 끌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당초 외세문물의 범람으로 한국이 문화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말끔히 씻고 ‘K-컬처’라는 이름으로 세계 문화시장을 휩쓸고 있다. 

그 중심에 한류의 전도사 역할을 묵묵히 감당한 약 80여개 해외 한인 방송사가 있다. 해외교민 800만 시대, 전세계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모국어 방송을 하는 한인방송사들이 있다. 

2005년 전세계 한인 방송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보 교류를 통해 해외 교민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미국 뉴저지에 본부를 둔 WAKB세계한인방송협회(이하 WAKB)가 창립됐다. 

2019년 김명전 회장이 취임한 이후, 이사회 결의를 거쳐 2020년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KCA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으로부터 사단법인 세계한인방송협회 최종 설립 허가를 받게 된다. 

한국정부의 사단법인으로 등록이 허가된 것은 모국과 해외 한인방송사를 연결하는 공식적인 창구가 열렸다는 의미다. 

팬데믹으로 묶였던 발이 풀리면서 한인 방송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WAKB도 활동을 재개했다. GOODTV-데일리굿뉴스가 WAKB와 합동으로 그 현장을 탐방하는 기획 취재를 연재한다.

달라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에서 3시간 만에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달라스보다 1시간 빠른 워싱턴 D.C.에서의 일정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현지 일정을 잡아준 WBS-TV 유관일 사장 덕분이다. 

첫 날 총 4군데의 신문사 및 방송사 취재 일정이 잡혀 있었다.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에서 30여분 만에 도착한 곳은 미주 한국일보 워싱턴지사이다. 미주 지역에서는 이민세대가 줄어들고 페이퍼 저널리즘이 쇠퇴하면서 대부분의 한인 신문사가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이 신문사는 단독 사옥에서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오히려 이채로웠다. 

박태욱 사장은 운영에 어려움은 없느냐는 세계한인방송협회 김명전 회장의 질문에 “지금은 이민1세대도 모두 실시간으로 유튜브를 본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뿐만 아니라 신문을 보는 한인 이민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또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인 인구 유입은 늘어도 이민 2·3·4세대들은 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한인 미디어가 현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젠 미국 사람들이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고도 했다. 

미국 전역 시청 가능, IPTV 기반 한인 방송 론칭

 ▲1 KBC 워싱턴미주방송 현판. 2 WDCT AM1310 사무실 내부 모습. 3 WK-TV 스튜디오. 4 미주한국일보 워싱턴지사 건물 전경. ⓒ데일리굿뉴스
 ▲1 KBC 워싱턴미주방송 현판. 2 WDCT AM1310 사무실 내부 모습. 3 WK-TV 스튜디오. 4 미주한국일보 워싱턴지사 건물 전경. ⓒ데일리굿뉴스

그럼 현지에서 한인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LA에 위치한 미주 한국일보 그룹이 2019년 , PC와 모바일에서 IPTV방식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한국 TV’를 개국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10달러의 수신료를 내면 2~3명이 동시에 한국 방송사들의 실시간 채널과 다양한 콘텐츠를 미국 전역에서 시청할 수 있다고 한다(‘한국TV’ 홈페이지 접속은 미국에서만 가능하다). 

박 사장은 “지금까지는 미국 내에서 한국 콘텐츠를 불법으로 제공하던 스트리밍 서비스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그는 “미 전역에서 합법적으로 시청이 가능한 플랫폼이 생긴 것은 미국의 대기업이나 정부 광고 등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좋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재는 한국에서 수급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라는 설명에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시애틀 라디오한국 서정자 사장의 말처럼 모국을 떠난 한국인은 모두 애국자가 된다. 박 사장은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이 37년이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언론인으로서 그가 체감하는 K-컬처의 영향력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오랜 기간 지켜봤지만 
“우선 일본에서 학계 등 연구자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원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에 비해 한국은 미약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세월을 지나 이제는 “K-컬처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영향력의 10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끝으로 “‘코리안’으로서 자랑스럽고 이민사회에 한인언론사로서의 역할을 잘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약속시간을 맞추려고 급히 이동한 다음 한인방송사는 지역에서 한인 이민자들이 가장 즐겨 듣는다는 라디오 WDCT AM 1310이다. 비즈니스 빌딩 5층에 자리잡은 AM1310 내부 첫인상은 단정했다.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해 준 김용일 대
표는 서울 중앙일보에서 근무하다가 99년 도미해 2001년 워싱턴 중앙일보를 창간했다. 이후 애틀랜타와 LA에서 신문사와 라디오방송을 개국하고 운영해 본 베테랑 언론인이자 방송인이다. 

AM1310을 인수하고 수년간 운영해 본 소감을 물었다. 김 대표는 “정부나 권력이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언론의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한인 이민사회에서 언론에 대한 니즈는 강하다”며, 한인 커뮤니티가 3그룹으로 나뉘어 문화 차이가 크지만, 결과적으론 코리아 DNA, 즉 정체성이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지 지역 한인방송사가 뉴스에 대한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엔 좁은 시장 여건에서 투입 인력 등 운영상 제한으로 능동적인 기능 수행이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美 교민 400만, 韓 정부의 한인미디어 활용 시급 

AM1310 송출 권역은 버지니아 주 전역과 메릴랜드 주 일부 지역이다. 이민사회 라디오 특성상 중장년층이 주로 듣기 때문에 영어가 서툰 이민세대에게 미국의 주요뉴스를 한국어로 들려준다고 한다. 

문제는 한인 방송 시장이 좁은데, 송출비 부담이 전체 지출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익구조는 광고뿐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있는지 궁금했다. 김 대표는 “교민사회에서는 우리가 한국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한인 동포들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메시지 전달 통로인 한인 미디어를 통해 교민사회를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부의 관심을 독촉했다. 

 ▲WDCT AM1310 회의실에서 교민사회에 대해 논의 중이다.왼쪽부터 AM1310 신연수 기자, 김용일 대표, GOODTV 이인선 본부장, WAKB 김명전 회장, WBS-TV 유관일 사장. WBS-TV에서는 매주 초대석을 방송하고 있다(오른쪽). ⓒ데일리굿뉴스
 ▲WDCT AM1310 회의실에서 교민사회에 대해 논의 중이다.왼쪽부터 AM1310 신연수 기자, 김용일 대표, GOODTV 이인선 본부장, WAKB 김명전 회장, WBS-TV 유관일 사장. WBS-TV에서는 매주 초대석을 방송하고 있다(오른쪽). ⓒ데일리굿뉴스

김 대표는 한국의 대외동포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국에서 20년이 넘는 이민생활을 한 그는 “일본이나 브라질은 정부 차원의 교민 지원이 잘 이루어지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협회에 바라는 점으로 흩어져 있는 교민사회에서 정부 조직을 세우긴 어려우니 “한인미디어를 통해 대한민국 국가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 목적지는 워싱턴D.C.에서 5개 TV 채널을 소유한 WK-TV이다. 2개 채널은 중국에 대여하고 있고, 한국어로 3개 채널에서 방송을 송출한다. 24시간 송출실과 편집실 등 제법 규모를 갖추었고, 편성은 주로 공중파와 종편 프로그램들로 운행하고 있었다. 

취재진을 맞이해 준 WK-TV 한면택 본부장은 CBS에서 시작해 35년간 기자를 지낸 언론인이다. 현재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WK-TV 한면택 본부장은 “케이블 채널에서 HD로 방송하려면 대역폭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용이 비싸서 SD로 방송되는 실정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TV 시청자의 변화도 언급했다. 

그는 “미국 케이블 시장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입자가 대폭 줄어들면서 프로그램 공급 수신료도 많이 줄었다”며, “현재 수입은 유튜브에 자제 제작 뉴스를 올리며 로컬 광고를 붙이거나 비즈니스 탐방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유튜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과 신뢰도로 TV가 운영되는 실정이다”라면서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력을 구하는 것과 인건비를 부담하기에도 벅차다”고 했다.

한인방송사 코로나 겪으며 구조 개편

다음날 아침 8시. 방문한 곳은 1980년 개국한 워싱톤KBC 라디오 방송이다. 얼마 전 42주년 기념 책자를 발간했다는 박용찬 사장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혼자서 아침 생방송을 거뜬히 끝내고 취재진을 맞이했다. 

박 사장은 취재진에게 모국에서 올림픽이나 큰 행사를 할 때면 가장 오래된 방송사인 KBC라디오를 모두 찾았다며 방송 초창기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방송한 것이 큰 자산이고 그 자체가 신용이다”라며, “처음 방송국 세팅할 때는 직원들 전부를 한국의 아나운서로 채용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현재 워싱턴 KBC라디오 방송은 5년전 공중파를 중단하고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이나 PC에서 청취할 수 있도록 구조 조정을 했다. 오랜 방송 경력으로 다가올 방송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방송 모델을 저비용 구조로 개편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촉박한 일정으로 정작 공항 픽업부터 모든 일정을 꼼꼼히 챙겨준 WBS-TV 유관일 사장이 운영하는 방송사 탐방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웅하는 차 안에서 개략적인 운영 현황을 들었다. 유 사장은 “WBS-TV 는 주에서 각 국 방송사업자에게 나누어 주는 공영방송 30번 채널을 배정받아 9시부터 11시까지 한국어 방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황금 시간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TV 운영은 카메라 한 대 교체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제작을 하면 할수록 비용이 발생하는데, 재정 확충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취재를 할수록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인방송사들의 고충이 역력히 느껴졌다. 시카고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세계한인방송협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인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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