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양가정의 모습.(사진출처=홀트아동복지회)
▲한 입양가정의 모습.(사진출처=홀트아동복지회)

[데일리굿뉴스] 이새은 기자= ‘혈연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맺는 것’. '입양'의 사전적 정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여태 해외에 입양된 우리 아동은 무려 17만 명에 이른다. 한국전쟁 기간에 통계가 누락된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해외입양 아동은 이를 훌쩍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22년 5월 11일, 입양의 날 17주년을 맞아 한국 입양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대한민국 = 아이수출국?

우리나라 입양의 역사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비롯된다.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이 제정돼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을 외국 가정으로 입양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당시 수만 명의 전쟁고아와 혼혈아를 해외로 입양 보낸 탓에 대한민국은 ‘아동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정부는 이러한 꼬리표를 떼고자 2007년부터 입양대상 선정 5개월간 국내 입양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국내 입양 우선제도’를 시행했다. 이후 2011년 8월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며 차선책으로 국내 입양을, 해외 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2007년 이래로 국내 입양이 해외 입양의 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1998년 이전까지 국외 입양 비율이 국내 입양 비율보다 3배 가까이 높았던 것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줄었을지 몰라도 해외 입양은 아직도 암암리에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입양아동 중 해외 입양 비중이 47.1%를 차지했다. 당시 국내 입양아동 수는 232명으로 2018년에 비해 20% 넘게 줄었지만 해외 입양 비중은 같은 기간 오히려 2.6%p 늘었다. 10년 전에 비하면 10%p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해외 유복한 가정에 입양돼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 수는 정체성 혼란과 상실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많은 입양 한인들이 성인이 된 후까지 친부모를 찾는다.

1987년 4월 미국 뉴저지주로 입양된 케리 지 씨는 애타는 마음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 씨는 “미국에 입양된 세월이 40년 가까이 됐으니 부모님 생각이 이제는 변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니 이제는 나타나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1979년 12월, 생후 3개월 때 미국에 입양된 김미주 씨 역시 “나를 입양 보낸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분들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라며 “부모님과 언니의 사진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토로했다.

▲ 김미주 씨 입양 당시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아이수출국’이라는 꼬리표 탓인지 한국 정부는 국내 입양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법무부는 독신자에게 친양자 입양을 허용하는 민법·가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녀의 복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25세 이상의 사람은 독신자라도 단독으로 친양자를 입양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일반 입양의 형태로 입양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법으로 입양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사회적 관습보다는 입양되는 아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은 "전통적인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거나 자녀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막연히 추단해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입양제도, 이대로 괜찮나?

하지만 입양 확대만을 위한 제도 완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 허용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독신자의 경우 일반적 부부와 비교해 실직과 같은 경제적 위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결혼 등 변수가 많다는 게 이유다. 심지어 동성커플도 입양이 가능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동이 가정폭력 등에 노출돼도 막을 사람이 없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입양가정 내 아동학대는 국내외 할 것 없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문제다.

지난해 1월,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은 입양제도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인 양은 입양된 지 8개월이 지난 생후 16개월 무렵 양부모의 학대로 췌장 절단과 갈비뼈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해당 사건은 전국민적 공분을 샀으며 입양 절차와 관련해 공공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 확산에 일조했다.

▲ 작년 5월, 경기도 양평군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한 시민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해바라기를 놓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작년 5월, 경기도 양평군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한 시민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해바라기를 놓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아직 한국사회에 입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입양을 ‘불임’과 연관지어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피는 물보다 짙다’는 혈연중심의 가족주의적 사고가 뿌리 깊어 입양가정을 불완전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의 ‘돌봄 취약계층 맞춤형 육아지원 방안’ 보고서에 의하면 입양부모 272명에게 '입양자녀를 양육하면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냐'고 질문한 결과, 28.7%가 '입양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주변의 오해'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주변인들이 입양부모를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낳은 자식처럼 키우지는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동시에 드러낸다고 밝혔다.

또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거나 입양자녀에게 장애가 발생하였을 때는 파양을 권유하는 등 주변 사람들이 입양자녀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드러냈다고 진술했다.

 

피보다 진한 '마음으로 낳은 내 자녀'

아이는 아기를 낳은 부모가 키우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회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양육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은 무엇보다 입양제도가 아동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양은 궁극적으로 입양아동의 복지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에 입양절차에서 아동의 견해가 비중 있게 포함되는 등 아동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산대학교 이은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입양정책 및 사회복지서비스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며 “양부모 위주의 아동 선정으로부터 탈피해서 아동위주의 입양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동인권전문위원회 전문위원인 강정은 변호사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정한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아동의 견해를 존중하고 이들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입양 과정뿐만 아니라 입양 취소 과정에서도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아동의 원가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사회적 분위기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입양 보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제입양아 가운데 미혼모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99.7%, 2019년 100%, 2020년 99.6%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입양문제가 미혼모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의미한다.

아동인권전문위원회 전문위원인 강정은 변호사는 입양아 원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며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살 권리를 보장하고, 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베이비박스’를 처음 도입한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 또한 “아직까지도 아기 키우기를 포기하고 눈물로 찾아오는 미혼모들이 많다”며 “한 생명이 태어난 이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낳은 부모가 키울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목사는 “혹여 입양이 불가피한 경우를 위해서는 가명출생신고제, 위탁가정제 등을 다양한 방식을 도입했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어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더 힘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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