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인 김양은 밤 10시쯤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탔다. 그녀가 내리는 정류장은 변전소인데, 늘 내리기전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버스정류소 바로 앞에 일명 빨간집으로 불리는 업소가 버젓이 들어서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빨간집이란 성매매를 포함한 질펀한 유흥문화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종 업소들을 일컫는다. 살짝 들여다보이는 유리문 안으로는 빨간색 조명들이 가득하고 아직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에게는 이 빨간집은 곧 불쾌감이다.

학교 마치는 시각은 고로 빨간집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각?!

울산광역시 남구 선암동 변전소 버스정류장에는 늘 많은 학생들이 버스를 탄다. 선암동 근처에는 학교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이 붐비는 장소이다. 중학생은 주로 오후 4시가 되면 마치기 때문에 버스정류소 앞에 있는 빨간집을 신경 쓰지 않지만, 문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마치는 시간에 있다. 빨간집들은 보통 초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인 송양(19)은 “낮에는 장사를 안 하지만, 저녁 10시쯤에 수업을 마치고 오면 빨간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무섭다”며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서 피해갈 수도 없고 심지어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학생인 이양(20)은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버스정류장인데, 바로 앞에 이런 집이 있으니 좀 그렇다. 대학생인 나도 무서워서 내리자마 뛰어가는데 고등학교 여학생들은 오죽하겠느냐.”며 미성년자 여학생들을 걱정했다.

빨간집들이 무서운 여학생들

울산에서 버스정류장과 빨간집이 밀착해 있는 곳은 비단 변전소뿐만이 아니다. 학성공원 전 정류장인 세민병원도 빨간집 옆에 위치해 있고, 청량면 덕하에는 다른 곳 보다 빨간집이 많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정류장과 가까이 붙어 있다.

이 세 장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주위의 상가가 많이 낙후되어 있어서 저녁이 되면 인적이 드물다는 것인데, 이양(19)은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려면 빨간집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데 저번에는 앞에 앉아 있던 언니가 오라고 손짓해서 식겁하고 도망갔다”며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가 아니라서 그 당시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했던 시기에는 성매매특별법으로 인해서 많은 빨간집들이 문을 닫았다. 그리하여 버스정류장 앞에 빨간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하지 않았기에 때문에 그리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후 빨간집들은 서서히 영업하기 시작했고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른이나 남학생들은 주로 아무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여학생들은 꺼림칙하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딸아이를 가진 어머님은 “요즘 세상도 흉흉한데.”라고 말하며 걱정했다.

버스정류장 앞에 빨간집이 있는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렇다면 과연 버스 정류장은 어떤 기준으로 세워지는 것일까. 울산광역시 시청 대중교통과에서는 “버스 정류장을 개설할 때는 주로 버스 노선이 신설되거나 수정될 때인데 여러 승객들의 편의를 체크하고 어디가 가장 좋을지 고려해서 설치한다”며 편의성을 우선으로 하여 설치한다고 말했다.

또 “버스 정류장 앞에 그런 곳이 있다고 해서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술집을 허가할 때도 특별히 앞에 버스 정류장을 고려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난해해했다. 버스 운전기사 역시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버스 정류장은 주민들의 편의성을 고려해서 시에서 허가해 준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도 밤 열시가 되면 학생들은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빨간집도 불을 켠다. 남학생들은 빨간 불빛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여학생들은 도망치듯 뛰어간다. 승객들의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환경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면 우리 학생들이 유흥업소에 쉽게 노출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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