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사진제공=연합뉴스)

"내가 돈이 없으니까 자식들한테 만나자고도 못 하겠어. 외롭고 고독하죠."

'황금연휴' 셋째 날인 지난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옆 불교계 비영리단체 사회복지원각 앞에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 약 350명이 길게 줄을 섰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밥 대신 빵이나 떡, 두유 등을 나눠주고 있다.

이모할머니(80)는 오전 4시 30분께 일어나 지하철 첫차를 세 번 갈아타고 이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여기에 안 나오면 저는 굶어 죽는다. 제게는 하나님만큼 위대하고 감사한 곳"이라며 "고마운 마음에 미리 와서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겐 장성해 결혼한 아들이 셋 있지만 다가오는 어버이날에는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을 계획이다. 할머니는 "자식들도 먹고살기 힘들고, 아직은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말자고 얘기하더라"며 "내가 돈이 없어 그런가 싶어 서운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긍지를 갖고 고독함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렇게 급식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회복지원각은 쉬는 날 없이 1년 365일 운영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잠시 쉬기도 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결국 다시 문을 열었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다'는 게 사회복지원각을 이끄는 원경 스님의 신조라고 한다. 황금연휴 첫날이자 부처님오신날인 지난달 30일에도 약 550명이 이곳을 찾았다.

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의 사연은 저마다 기구하다.

이 모 할아버지(83)는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기운 뒤 서울역 등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은 배식받은 빵을 아껴서 부인과 손주들에게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처음엔 기가 막히게 외로웠지. 근데 외로움에도 차츰 면역이 되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사는 임 모 할아버지(83)는 비교적 형편이 여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몸이 성하지 않은 탓에 용돈은 모두 병원비로 써 밥을 사 먹기에 빠듯하긴 매한가지다.

임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식사 때 되면 '아버님 식사하세요'라며 밥을 차려주니까 미안해서 밖에 나온다"며 "아침에 나와 야산에 가서 놀다가 밤에 집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손주들이 초등학교·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며느리는 걔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지 않겠나"라며 "외식을 한다고 해도 '너네끼리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다리도 아프고 쉬고 싶더라"고 했다.

정 모 할아버지(78)는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있으면 잠도 안 오고 답답해서 환장한다"며 "늙고 갈 데가 없으니 외로움을 달래려고 여기로 출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소윤 사회복지원각 총무는 4일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부분 의지할 곳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의지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며 "고위층 자녀를 둔 분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강 총무는 이어 "형편이 아주 어렵지 않은 분들도 이곳에서 동년배를 만나며 마음의 배고픔을 채우고 위로받으시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이 모 씨(56)는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 등이 있는 가정의 달이지 않느냐"며 "자식들한테 부모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어르신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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