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감염병의 확산 속에서 되새기는 부활절의 의미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등록일:2020-04-11 1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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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사회적인 현상
▲정재영 교수ⓒ데일리굿뉴스

코로나 19의 여파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정점을 찍은 후에 소강기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집단 감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는 바이러스가 오히려 더욱 급격하게 퍼지고 있어서 비교적 청정지역이라고 여겨졌던 남미와 아프리카까지도 감염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올해 상반기 내내 전세계가 전염병에 시달릴 것이고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 예측되는 가운데 일종의 풍토병으로 자리잡아서 올 가을에 그리고 해마다 재발생할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질병은 태고로부터 인류를 위협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 받고 희생되어 왔다. 이러한 건강과 질병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향을 받는다. 중세 시대의 주된 질병은 전염병이었는데 14세기에는 흑사병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전염병이 인간을 괴롭혀 왔는데, 의학의 발달로 현대 사회에서 전병병은 거의 근절되고 암이나 심장 질환과 같은 비감염 질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 원인조차 불분명한 전염병이 예기치 못하게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질병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체와 질병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통계로 보면, 상류층에 비해 하류층은 출생 시의 몸무게가 더 적게 나가고, 영아 사망률이 높으며, 어른이 된 뒤에도 더 작고, 건강하지 못하고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들도 하류층에서 훨씬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그럴 능력도 없다. 질병에 시달리더라도 제때 치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결과로 병을 더 키우게 되고 일찍 생을 마치게 된다.

사람을 차별하는 전염병
이번 코로나 19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염병이 계층을 구별해서 감염시키지는 않는다. 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려서 걸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류층의 사람들은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나 소독제와 같은 의약품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고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직장 환경을 스스로 개선할 수도 없으며 생계 때문에 그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건강식품을 사 먹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부자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감염되면 돈을 들여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만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일터에 나가면서 자신의 감염 여부조차 알지 못한다.

태풍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하류층의 사람들은 더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허리케인이나 지진이 계층을 가려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류층에 비해 하류층의 사람들은 더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고 비용을 들여서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외부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은 사회 약자일수록 더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결국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게 일어난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코로나 19가 유럽과 북미 지역에 큰 피해를 주고 있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로 퍼지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희생을 낳게 될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최근 들어 공공 의료 시설을 줄여서 전염병에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고 그 결과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공공 의료 시설이 아예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제3세계에서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염병 속에 부활절을 맞이하는 교회의 모습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감염병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교회 역시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특히 기독교 최고 절기인 부활절을 맞으면서도 기념 예배를 교회당에서 드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많은 교회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활절을 연기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부활절 예배를 잘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사망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죄에 빠진 개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로 부르신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특별히 이 세상의 수많은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보이셨고 사랑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개인만 구원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창조세계의 회복과 이 땅의 모든 억눌린 자들이 태초에 지음 받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마스크 구입이 어렵고 소독제를 구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생활 전선에서 정신없이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감염병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 노숙인, 비정규직 노동자, 대리운전 기사, 문화예술인, 아르바이트생, 프리랜서, 돌봄교사, 시간강사 등 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와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외국인들은 배제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주민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면서 더 큰 위험에 빠져 있다.

이들을 위해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질병과 치료를 담당하던 주요 기관은 가족과 함께 교회였다. 근대 의학과 병원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했고 중증 환자들은 교회에서 돌보았다. 이번에 유럽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해서 장례식장에서 수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교회 건물에 시신들을 안치한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신앙의 가치를 지킬 뿐만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시기에 부활절의 참된 의미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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