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 거머쥔 봉준호 감독.(사진제공=연합뉴스)

"92년 아카데미상의 역사가 산산조각이 났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온 미국 뉴욕타임스의 반응이다. 한국말로 한국의 문화를 담아낸 K무비가 아카데미 감독상은 물론 각본상과 작품상까지 휩쓸리라곤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기생충'은 어떻게 자막의 한계, 언어의 벽을 넘어섰을까.

2시간 11분 영화 내내 영화 대사라곤 서너 마디, 외국 영화가 갖는 자막의 장벽과 '백인 위주' 할리우드의 오랜 배타적 전통을 극복하고, '기생충'은 아시아계 영화로는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뒀다. 보수적인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썼다"(CNN)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기생충'이 각본상을 수상한다면 작품상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각본상 수상은 언어와 정서,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각본상 수상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주제와 정서가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뜻이다. 빈부 격차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유머·공포·비극으로 변주한 '기생충'은 강렬한 이야기의 힘으로 세계를 녹였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것은 이러한 작품성과 함께 화합과 균형, 다양성 등에 무게 중심을 둔 최근 변화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아카데미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아카데미상을 2015~2016년 백인 중심으로 후보를 꾸려 '백인 잔치' 논란에 휩싸이면서부터다. 2016년에는 영화인들의 보이콧 선언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에 아카데미는 회원 가운데 여성과 소수계 비율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리고 회원 투표권도 1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런 변화의 흐름 정점에 '기생충'이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아카데미는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성을 갖추려고 해왔다"면서 "'기생충'의 수상은 오랜 세월 외국 영화를 낮게 평가하는 데 만족해 온 미국 영화상에 분수령이 됐다"고 평가했다. 

거대 자본이 모여드는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으로 '기생충'의 해외 흥행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계에선 '기생충'을 타고 K팝·K무비 등 한국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생충'의 수상은 더는 우리 문화가 변방이 아니며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부에 당당히 입성했다'는 뜻이라는 분석이다.

봉 감독은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소감을 내놨다.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이제 세계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며 "'기생충'처럼 한국 영화 그 자체가 미국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수상은 한국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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