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치 자막의 장벽과 완고한 오스카 전통을 깨는 데 한 세기가 걸렸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인들의 꿈의 무대인 아카데미에서 최고상을 석권하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영화 101년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도 다시 썼다.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사진제공=연합뉴스)

국제영화상·작품상 동시 수상 최초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부문까지 4관왕을 휩쓸었다. 첫 도전임에도 오스카에서 4개의 트로피를 받으면서 지난해 최고의 영화임을 입증했다.

'기생충'의 수상 자체는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일이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으나 최종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오스카 수상에 성공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특히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받아 오스카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동안 오스카는 외국어 영화에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의 영광을 내준 적이 없다. 아카데미상은 영어권 영화를 중심으로 시상하는 미국 영화상으로, 예상을 크게 벗어난 의외의 선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생충'의 선전은 높이 평가된다.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카데미는 주류 사회의
ⓒ연합뉴스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면서 "기생충이 주류 사회에 대한 비판, 가진자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영화임에도 최고상을 준 것은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독상 최종 후보에 올라 쿠엔틴 타란티노 등 세계적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실 만으로도 감격했던 봉 감독은 이들을 모두 제치고 감독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아시아계 감독이 오스카에서 수상한 건 대만 출신 이안 감독 이후 봉 감독이 두 번째다.

하지만 이안 감독이 오스카를 차지한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브 오브 파이' 모두 할리우드 자본과 배우들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였다는 점에서 봉 감독의 성과는 남다르다는 평이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미국 할리우드의 벽을 완벽히 넘어선 '기생충'.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기점으로 영화계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게 영화계의 전망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는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것은 화합과 균형, 다양성 등에 무게 중심을 둔 최근 변화의 흐름과 관련 있다"면서 "그런 변화의 흐름 정점에 '기생충'이 있다. 올해 아카데미를 기해 미국 영화계가 국제(global)와 현지(local)를 아우르는 '글로컬(glocal)' 영화상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