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색이 검다는 이유로 입양하기를 꺼려한다는 '블랙독'. 우울증 혹은 낙담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블랙독 증후군'은 사회학적 용어인데 드라마 제목으로 쓰이며 최근 그 의미가 조명되고 있다. 기간제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블랙독'의 얘기다.

학교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우리 주변에 실재하고 있는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의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tvN 드라마 <블랙독> 한 장면.(사진제공=tvN)

경쟁·갈등의 교육 현장

"그럼 선생님은 여기 내년에도 계시나요?"

비정규직으로 1년 이후를 장담할 수 없어 학부모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정규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고문 속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살아간다. 드라마 '블랙독'이 그린 기간제 교사의 현실이다.

'블랙독'은 기간제 교사가 된 사회초년생 고하늘(서현진)이 갓 사회 조직에 입성해 턱없이 냉정하고 벽이 높은 현실에 부딪치는 모습을 그린다. 기간제 교사들의 열악한 처지, 더 나아가 모든 교사의 직업적 애환도 이야기한다.

그동안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무수히 많았다. 학원물에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체는 대부분 학생들로, 교사가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성격은 전형적인 틀 안에서만 묘사됐다. 학생에게 무관심한 방관형 교사거나 나쁜 선생,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참스승 등의 모습으로 말이다.

'블랙독'의 차별점은 이 같은 제한적 묘사에 벗어나 직업적인 측면에서 교사의 현실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교사의 노동 조건과 다양한 업무들을 여과없이 묘사한다. 학교판 '미생'이라 불리는 이유다.

교사라는 한 전문 직종을 담백하게 그리는 한편 학교라는 현장이 교사들을 어떻게 좌절시키고 현실 순응적으로 만드는가를 비판적으로 그린다.

'이번에 채용된 기간제 교사 중 1명은 1년이 아닌 5개월로 계약이 단축된다'는 학교 측의 통보에 누가 희생양이 될지 몰라 동료 기간제 교사들끼리 눈치를 본다. 교사들은 서로 평가하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조차 할 여유가 없다. 

'블랙독'이 그린 이러한 현실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일까. 현실 속 기간제 교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불안과 불합리한 처지에 놓인 경우가 적지 않다.

기간제 교사들은 공립학교에서 정규교원 임용에 우선권이 없고 임용기간이 끝나면 퇴직해야 한다. 사립학교에선 교육공무원도 근로자도 아닌 애매한 신분으로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현직 기간제 교사인 ㅎ 고등학교 교사 김 모 씨(30·여)는 "기간제 교사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다. 담임을 맡으면 불안해 하는 학부모도 있다"면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재계약을 위해 참게 되는 게 사실이다. 기피 업무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교사 이 모씨(35)는 "쪼재기 계약이라고 몇 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기도 한다"면서 "계약이 계속 연장되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불안감을 늘 갖고 있다. 고용 불안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규 교사들은 구조화된 학교 시스템 속에서 교사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지키기가 어렵다. 드라마는 '아이들이 무한 경쟁 속에 내몰리는 동안 교사들은 무얼 했는가'란 질문에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시로 오는 메신저 지시에 답변하느라 옆자리 동료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노동자들의 지친 얼굴로 답을 대신한다. 

'블랙독'은 그저 정규 교사 대 기간제 교사의 대립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을 양성하는 학교 현장마저 과도한 경쟁과 갈등으로 무너져가는 씁쓸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가 경제적 논리로 구조화되면서 교사들조차 서로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면서 "교육의 근본적 의미를 묻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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