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영적 방황을 하는 목사들이 꽤 있습니다. 수십 년간 설교해 오던 일상에서 벗어나면 해방감을 느낄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죠. 저도 은퇴 전에는 ‘내가 은퇴하면 그동안 밀린 책도 읽고 제대로 쓰지 못했던 글도 마음껏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은퇴에 이르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하면서 이제는 기쁨을 느낍니다.”
 
 ▲효림요양병원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조이로드 윈드앙상블 단원들. ⓒ데일리굿뉴스

매주 수요일 오전 서울 노원구 월계동 두란노교회 교육관.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유포니움을 든 6명의 연주자들이 모여 잠시 예배를 드리고 커피로 담소한 후 각자의 악기로 화음을 맞춰간다.

이들 모두 목회 현장에서 은퇴한 6명으로 구성된 조이로드(JoyRoad) 윈드 앙상블 멤버들이다. 최연장자 이병일 목사 78세, 막내격인 한명원·이광형 목사가 75세인 이 악단은 2016년 결성돼 지금까지 60여 차례 공연을 했다. 교도소, 양로원, 교회 등이 이들의 주 활동 무대다.

앙상블 결성은 두란노교회 원로 목사인 오광섭 목사(78)의 제안에 의해서다. 덕성여중고 교사출신의 오 목사는 교회를 개척해 28년간 사역하다 지난 2012년 은퇴했다. 은퇴 후 처음에는 자유로움도 느꼈지만 이후 ‘자칫 영적 백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이로드 윈드앙상블 단원들(앞쪽 좌로부터 클라리넷 오광섭, 플루트 장은혜, 뒤쪽 좌로부터 튜바 이병일, 색소폰 이광형, 클라리넷 이영철, 플루트 한명원 목사). ⓒ데일리굿뉴스

그때 예장 통합측의 은퇴목사들의 모임인 ‘서울은퇴목사회’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악기를 연주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그 자신 목회시절 색소폰을 배웠고 동생에게서 클라리넷을 선물 받아 틈틈이 연습해왔던 그는 가끔 다른 교회 행사에서 연주봉사도 했다. 이 경험을 떠올려 ‘교회 행사에서만 연주하기보다 악단을 만들어 봉사하자’고 설득해 5명으로 출발한 것이 지금의 조이로드다. 이후 대전에서 장은혜 목사가 ‘홍일점’으로 합류했다.

물론 멤버들 중에 음악 전공자는 없다. 군 복무 중 군악대에서 악기를 불어본 목사가 2명, 학창시절 악기를 다뤘던 목사 1명이 그나마 약간의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배우다시피 악기를 익혔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두란노교회에서 연습모임을 이어갔다.

2016년 4월 7일 남부구치소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첫 연주회를 가졌다. 단장인 오 목사는 “한번은 남부구치소에서 ‘고향의 봄’, ‘어머니 은혜’ 등을 연주했더니 현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며 “여성재소자들 앞에서 연주했는데 한 재소자가 저희에게 다가와 ‘저도 모태신앙’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편곡과 단원들의 음악 지도는 서울대 음대를 나와 전문 지휘자로 활동하는 김희수 씨가 도와준다. 김 씨는 오 목사의 덕성여중 교사 시절 제자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했다.

단원들이 고령이라 건강이 가장 큰 걱정. 악기의 무게도 매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단원들이 나누는 인사는 “아프지 말자!”이다. 그만큼 봉사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