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노래가 흐르자 아바야(목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검은색 긴 통옷)를 입고 얼굴에 니캅, 히잡, 차도르를 두른 여성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아미밤(방탄소년단 공식 응원봉)을 흔들며 한국어 가사로 '떼창'을 하기도 했다.
 
 ▲사우디 킹파드 인터네셔널 스타디움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 공연 당일 3만여 명의 아랍 팬들이 모였다.(사진제공=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러브 유어 셀프: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SPEAK YOURSELF) 콘서트를 본 아랍 팬들은 이같이 반응했다.
 
BTS는 이번 사우디 공연으로 해외 가수로서는 최초로 리야드 스타디움(야외 공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는 기록을 세웠다. 춤과 음악이 금기시된 나라에서 BTS의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직접적인 초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전날인 10일에는 리야드 시내 랜드마크 타워들은 BTS를 상징하는 보랏빛으로 물들어 눈길을 끌었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엄격한 종교적 율법을 적용하고 체득된 보수적인 관습을 지켜온 사우디 정부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과감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 등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춤을 추는 것을 금기하고, 남녀 관객이 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탄소년단 공연에서 아바야를 입은 현지 팬들이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비전 2030 제시로 파격 개혁 행보
 
사우디 경제개혁을 지휘하는 31세 빈 살만 왕세자는 "오락 선택의 결여가 도시에서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투자자들과 외국 인력을 가로막아왔다"고 지적하며, 개방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지난해 사우디는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과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35년 만에 상업 영화관을 재개관하기도 했다. 올해 3월부터는 외국인 방문객을 늘려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비자발급 요건을 완화했다. 지난 9월 28일부터는 세계 4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관광비자 신청을 받고 있다.
 
BTS 공연 나흘 전부터는 외국인 남녀가 조건 없이 호텔에 투숙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하고, 사우디 여성도 남성 보호자 없이 혼자 숙박업소에 투숙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는 외국인이라도 부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호텔에서 한 방을 쓸 수 있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왕위 계승 서열 1위 왕세자이다.(사진제공=연합뉴스)

이 같은 개혁 행보는 2017년 부총리에 오른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을 제시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비전2030은 탈석유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산업의 비중을 현재 3%에서 2030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개혁안에는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엔터테인먼트 사업 비전이 들어있다. 세계 유명 스타들의 공연을 유치해 전 세계에 개방적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이다. 즉 엔터테인먼트 사업 성장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고, 경제 개혁을 이루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우디 정부는 음악이 사람을 문란하게 만든다는 종교 보수세력의 반대에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장려하고 있다. 시민의 오락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전담 기구 GEA를 신설했고, 아랍이나 해외의 유명 가수의 공연을 유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 BBC는 사우디가 이같은 경제·사회적인 개혁을 시작한 배경에 대해 오랜 기간 석유에 의존해온 사우디가 전 세계 유가 불안정성에 타격을 입으며 새로운 경제 개발 동력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의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개방을 안 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디어와 SNS에 능숙한 청년들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아랍문화연구원 소윤정 교수는 "사우디가 두바이나 아랍에미리트가 공동체적으로는 이슬람을 추구하면서도 관광이나 문화를 개방해 부를 축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우디와 같은 강경 이슬람 국가에서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이슬람 종교성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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