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나는 자연인이다>가 있습니다. 도시를 떠나서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벌써 368회(2019년 10월2 일 기준)가 진행 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내면의 모습을 보면 자연이 정말 좋아서 들어간 분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저마다의 많은 사연이 자신을 산속으로 몰아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홀로 고독한 생활을 즐기는 것입니다.
 
 ▲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도시를 떠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휴가차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살려고 들어가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도시로 대변되는 모든 관계를 단절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누구도 선뜻 감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교회사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더욱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에 정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도원입니다.

교회사 가운데 나타난 수도원은 광야와 사막 그리고 깊은 산과 높은 바위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로부터 철저하게 단절하였습니다.

이렇게 도시와 단절하여서 자신만의 삶을 해결하려고 하였던 이들을 수도사라고 부릅니다. 한때는 이들의 모습이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프란시스코나 베네딕트 그리고 왈도 파와 같은 청빈을 강조하면서 경건에 힘쓰는 수도원들이 존귀한 존재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패성은 자연으로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부패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 수도원의 타락은 가시화 되었고 그 곳에 흘러나온 추악하고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은 더 많은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결국 인간은 도시에 있으나 산속에 있으나 같은 존재였습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어갔던 산에서 도리어 죄만 지은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수도원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자연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도시를 떠난다고 해결 된다면 더 이상 교회는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교회도 절과 같이 산에 지어지고, 목사들은 증려들과 같이 출가하여 해탈을 위하여 힘쓰면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출가한 목사들을 희생염소 삼아서 자신들의 죄를 뒤집어씌우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세상입니다. [요17:18] 세상에서 데려가심이 아니라 세상에 보내심이 바로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성경의 뜻이 아닙니다. 수도원을 만들고 그 곳에 사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세상을 갔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나와서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사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변화산의 초막 셋이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산 아래서 귀신들려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구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세상이 힘들다고 산으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산에서 살다가 세상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편하게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선지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세상에서 도피하여 홀로 자신의 고독을 씹으며 유유자적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만인 제사장이며 동시에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현실은 어렵고 힘듭니다. 수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신자의 사명입니다. 선지자적 현실주의는 현실도피주의가 아닙니다. 현실에 살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발적 불편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야 합니다.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영생을 선물로 받은 신자의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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