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베르테르 효과보다 중요한 것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등록일:2019-10-13 12: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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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증가한 자살률
 
▲정재영 교수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가 1만 3,670명으로 2017년보다 9.7%(1207명) 증가했고,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6.6명으로 전년(2017년 24.3명) 대비 9.5%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령대로 보면, 8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증가했는데 특히 10대(22.1%), 40대(13.1%), 30대(12.2%)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서 크게 늘었다. 10~30대에서 사망원인은 자살이 1위였고, 40~50대에서도 암에 이어 자살이 2위를 기록했다. 특히 10~30대 자살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10대 자살률은 35.7%로 2위보다 2배 이상 높다. 20대 사망률은 절반에 육박하는 47.2%가 자살이었고, 30대도 39.4%로 매우 높다.

연간 자살 사망자가 1,3670명이라는 것은 매일 37.5명이 자살로 사망한다는 뜻이다. 약 38분마다 1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다. 자살 기도자는 자살 사망자보다 10~20배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2~3분마다 한 명꼴로 자살을 기도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나라는 다시 OECD 자살률 1위에 올랐다. 최근 10년 이상 자살률 1위를 유지하다가 작년에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면서 2위로 내려왔으나 이번에 자살률이 증가하면서 다시 자살률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정부에서는 ‘베르테르 효과’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 베르테르를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 시도까지 늘면서 생긴 말이다. 곧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으로, '모방 자살', '자살 전염'이라고도 한다. 복지부는 지난해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유명인 자살사건이 다수 있어 베르테르 효과가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베르테르 효과보다 중요한 것

베르테르 효과는 자살 유형에서 다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많은 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에 언론에서 자살 사건에 대해서 보도할 때 자살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고 특히 자살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자살 보도 지침’에 정해져 있기도 하다.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자살의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베르테르 효과라면 자살 예방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따로 자살을 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하기도 어렵고 자살 위험이 있는 유명인들을 별도로 관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일반인들이 유명인들을 따라 모방 자살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할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자살 예방의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살이 전염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자살의 징후가 없고 자살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유명인을 따라 무심코 자살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꼽히고 있으나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자살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더 협력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에는 자살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경제 위기나 가정의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으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도 사회 구성원들이 고립이나 단절되지 않고 서로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공동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동체적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출세와 성공 지향이라는 우리 사회의 강력한 문화 · 정서적 경향은 학생들을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입시 경쟁으로 내몰아, 수능시험 날이 되면 수험생이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가족의 안정을 위해 성공과 출세의 압력에 시달리는 40대 남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족마저도 성공을 위해 수단이 되는 도구적 가족주의 경향 아래서는 노인들은 전혀 효율성이 없으므로 가족과 사회의 짐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 결과로 2000년대로 들어선 이후 노인 자살자 증가율이 전체 자살자 증가율의 대여섯 배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더라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혼자 살다가 외로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고독사’도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어느 수준인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32명이 고독사로 숨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93명에서 2012년 741명, 2013년 922명, 2014년 1008명, 2015년 1245명으로 늘었다. 2011부터 2015년 사이 77.8퍼센트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OECD의 사회 분야 통계에서 중요한 통계로 공표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사회지출이다. 이 지표들이 나쁠수록 병과 실직, 노환 등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국가나 사회의 도움보다는 개인이 더 많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지출 부문에서 대부분 OECD의 꼴찌나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를 묻는 공동체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내용 역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살을 예방하는 공동체 환경

이번 사망원인 통계 발표 후에 전남 고창군은 이 지역의 자살률이 전라북도 내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고창군의 지난해 자살률은 15.3명으로 전라북도에서 가장 낮았고 전국 평균보다도 훨씬 낮았다. 특히 전년(2017년 기준) 대비 15.7명이나 줄었는데, 이것은 지역 전체의 생명존중 분위기 확산과 군민 행복도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주효했다고 자체 평가했다. 여기에 단순한 ‘자살을 예방합시다’라는 말 보다는 고위험자를 직접 대면하며 위로·격려하는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체 환경은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도움이 절실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극도의 절망감에 빠졌을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자살을 기도할 가능성은 현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한 경쟁 속에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회는 사회에서 성공하고 최고가 되라고 가르치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고 약한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소모임들과 위원회 활동들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있는 취약계층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귀한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한국 교회가 힘을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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