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칼럼] 체면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신동식 목사 (shinds3927@hanmail.net)

등록일:2019-07-14 16: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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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식 목사 ⓒ데일리굿뉴스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면입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을 아주 특별나게 만듭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체면은 예의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체면은 예의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의는 도적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체면은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더욱 중요하게 여깁니다. 도덕적인 내적인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본질적으로는 외적인 모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면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가장 확실한 모습은 거주 문화입니다. 한국에서 유독 강남이 아파트가 비싼 이유는 문화적인 효과도 있지만 체면이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강남에 산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신분이 우월하게 여김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빌라에 사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서 또래 집단을 만들고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에서서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체면문화의 감염된 사람들의 속 좁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체면은 교육의 분야에서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좋은 대학이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우월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죽도록 공부시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학벌의 카르텔은 기독교인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동시에 학력에 대한 동경심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살아온 삶의 이력을 다 무시하게 만듭니다. 외적인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종종 봅니다. 대단한 기상을 가지고 있어도 돈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봅니다. 그 가운데 대형교회에 대하여 비판하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기부 받을 일이 생기면 비판하던 교회의 장점을 강조하고 기부할 수 없는 작은 교회를 우습게 여깁니다.

체면의식이 또 기승을 부리는 것이 바로 외모지상주의입니다. 속이야 어떻게 되든 외모만 빛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모는 무서운 무기가 틀림없습니다. 보함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은 모두 눈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강력한 무기가 안목의 정욕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것과 싸우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안목의 정욕에 강력한 친구가 바로 체면의식입니다.

이렇게 체면 의식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가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체면의식은 정직한 나눔과 고백을 하는 것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나누지 못할 때 심각한 질병에 걸립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각종 정신적 질병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질병을 나누는 목록을 보면 각종 인격성 장애가 존재합니다. 우울증, 조현병, 경계성 인격장애등 많은 질병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의 근원에는 자신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나눔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적당한 관계유지만을 가진 체 신앙 생활합니다. 이것은 신앙보다 체면의식이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체면의식이라는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표적인 것이 직분일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 당연히 직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받지 못하면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체면의식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교회들이 명예직을 만들어서 성도들을 달래는 것을 봅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타락이 싹튼 것입니다.

체면의식이 교회 안에서 가장 위험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봉사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봉사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자발적 감사의 표현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에 대한 감사가 바로 봉사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아니라 체면의식으로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타락을 부추기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잘 속습니다. 정직한 고백과 자발적 감사가 없어도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체면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목표가 사라지면 그만 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받으면 포기합니다. 자발적인 봉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체면의식은 상대방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항상 시험과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필요합니다. 감사는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이유 중 하나가 우리를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강력한 힘이 됩니다. 감사는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삶을 결코 절망에 빠뜨리지 않습니다.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감사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동일한 장소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지만 범사에 감사함으로 사는 사람과 불만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맡기신다면 누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입니다. 오늘도 나의 삶의 자리가 감사로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체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감사로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을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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